아치 에네미(Arch Enemy)라는 스웨덴 출신의 메탈 밴드가 있다. 사실 시작은 스웨덴이지만, 지금멤버들은 여기저기 국적인 것 같다. 요즘 구분으로는 멜로딕 데스 메탈 (melodic death metal) 밴드에 속한다 할 수 있단다.
내가 이 밴드를 어떤 경위로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쌍팔년도 즈음에 락 음악을 듣기 시작한 내가 21세기에 등장한 (사실 이 밴드는 20세기 말에 등장했다) 해외 메탈 밴드 중에 꽤나 호감을 갖는 밴드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아치 에네미가 그 중 하나이다.
내가 이 밴드의 음반 중에 Wages of Sin이란 2001년도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8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쓰래쉬 메탈 (thrash metal) 밴드에서 느낄 수 있는 속도감에 헬로윈(Helloween)의 듣기에도 좋은 멜로디 감이 귀에 쏙 들어오더라. 보컬은 내가 그리 좋아한다고 할 수 없는 그라울링 스타일의 보컬인데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알고 보니 보컬이 여자였다.
내가 처음 이들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곡! 2001년 Wages of Sin 앨범의 첫곡!
영상은 2004년 DVD에 수록된 버전인 듯.
2008년부터 두 번의 내한 공연이 있었는데, 기회가 안 되어서 공연을 보지는 못 했다가, 2014년 신보 War Eternal 발매 이후 세계 투어의 일환으로 내한하게 되는 공연을 노리게 되었다. 이번 신보엔 기존에 노래를 하던 안젤라 고소우(Angela Gossow)[위의 영상 속의 여성 보컬]의 후임으로, 캐나다 출신의 앨리사 화이트-글루즈 (Alissa White-Gluz)가 가입했다. 전임의 안젤라 못지 않은 그라울링 보컬이지만 안젤라보다는 귀엽게 생겼다. 페이스북을 보고 이들의 내한 공연 소식을 접하고 기다리는 중, 선예매 소식을 듣고 정시에 입금 완료. 하루 뒤에 받은 메일... 예매 번호 1번! 움핫핫핫.
이번 투어가 결정된 후에 기타리스트가 바뀌었단다. 원래 아치 에네미의 기타리스트가 형제였는데, 동생이 밴드를 들락날락하다가 최근엔 제3의 인물이 함께 해서 앨범까진 냈었다. 그러다가, 이번 투어 도중에 제프 루미스(Jeff Loomis)란 인물이 합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포스터 사진의 제일 오른쪽 인물). 난 이 인물에 대해 잘 몰랐는데, 16살 때 메가데스(Megadeth)의 기타리스트로 오디션을 볼 정도 실력이었고, 생츄어리(Sanctuary)와 네버모어(Nevermore)와 같은 꽤나 알려진 밴드의 기타리스트였다고 한다. 하여간, 페이스북을 보니 제프의 합류는 꽤나 화제가 되는 것 같아 보인다. 어쨌든,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합류한다고 하니 다행이고 기대가 더 된다.
공연장은 처음 가보는 Yes24 무브홀 (MUV Hall)이라 한다.
내가 이들의 곡들을 모두 알진 못하기에 Setlist.fm이란 곳에서 2월 중순 남미 투어 선곡표를 보고 예습을 했다. 이래저래 날은 흘러 공연 당일. 집안일 좀 도와주고, 아이들 공부도 좀 봐준 후에 신촌으로 출발. 신분당선이 개통되어서 그나마 시간이 많이 단축되긴 했다. 그래도 1시간 반 정도. 도착해서 받은 당당한 입장번호 1번 티켓!!!
기다리면서 건물 뒤쪽으로 가니, 다음의 한 음악카페에서 알게 된 분이 계셔서 인사. 그런데, 그 옆에 멤버인 듯한 사람이 함께 있다. 오잉~ 덩치가 산만하네. 어휴. 난 멤버들을 잘 모르니 패스. ^^ 가져간 찹쌀떡 하나로 요기하고 기다린다.
5시 30분 좀 넘으니 입장 번호 순서대로 줄을 세운다. 다 내 뒤에 줄을 서세요! 흐흐. 기다리면서 보니, 생각보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관객들도 보인다. 나랑 비슷하게 이 밴드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6시 즈음에 입장 시작. 무브홀은 처음 가보는데,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산뜻함이 느껴졌다. 공연장은 좀 작고 무대를 기준으로 길이 방향으로 좀 긴 형태였다. http://muvhall.co.kr
서둘러 펜스 앞에 자리를 잡았다. 정중앙에서 살짝 오른쪽에 자리 잡았다. 보컬을 정면에서 보는 것 보다 살짝 옆에서 보는 게 더 멋있을 것 같아서... 그리 크지 않은 공연장이라 그런지 거의 꽉 찬 것 같다. 무대엔 뒤쪽에 메인 밴드 드럼이 막에 씌워져 있고, 그 앞에 단출한 드럼셋이 있는 것이 오프닝을 하는 메써드(Method) 것인가 보다.
6시 30분 즈음이 되었던가? 오프닝 밴드로 메써드가 무대에 올라왔다. 4인조 체제로 바뀐 후에 두 번째 보는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본 무대에선 늘 리드 기타리스트 김재하가 오른쪽에 있길래 살짝 오른쪽에 자리 잡았는데, 오늘은 김재하가 반대편에 있다. T_T 리허설 시간이 부족했다는 글을 나중에 봤는데, 사운드 밸런스를 잘 못 잡았는지 사운드가 귀에 쏙 안 들어온다. 그래도, 여전히 살벌한 연주가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한다. 새로 합류한 드러머도 살벌하게 잘 치네. 나머지 멤버들이야 당연 훌륭!
네 곡의 곡을 연주하고, 메써드는 퇴장. 무대 정리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펜스에 기대고 있긴 하지만 좀 힘이 든다. 에구구. 공연 관계자가 밴드 측에서 관객들 안전을 위해 너무 과격하게 놀지 말아달라 요청을 한다. 흠.
7시 반 정도 되었을까? 불이 꺼지고 오프닝 곡이 흘러나온다. 으흐흐. 그러면서, 첫 곡이 터져나오는데 크헉!!! 뒤에서 엄청난 압박이 가해진다. 뒤에서 밀고 옆에서 밀고... 그래도 펜스에 붙어서 버틴다.
정면에 보컬인 앨리사, 제일 왼쪽에 밴드의 리더라 할 수 있는 빨간 머리 마이클 아모트 (Michael Amott), 그 옆에 덩치 베이시스트 샬리 디 안젤로 (Sharlee D'Angelo), 정면엔 보컬 앨리사, 우측엔 새로 합류한 금발 기타리스트 제프 루미스... 무대 뒤쪽에 드러머 다니엘 엘란드손(Daniel Erlandsson)...
그런데, 내가 예습한 첫 곡은 Enemy Within이라고 나도 잘 아는 곡인데, 잘 안 들린다. 사운드가 영~ 이상한 것 같진 않은데. 나중에 인터넷 보니 선곡표가 내가 예습한 것과 좀 달랐다. 그래도 분위기 장난 아니다. 내 뒤에서 손이 하나 어깨 위로 앞을 향해 있는데, 왼쪽 어깨 위로 왼 팔이, 오른 어깨 위로 오른 팔이 앞을 향해 있다. 바로 내 등에 한 명이 바짝 붙어있는 꼴이다. 에잇. 불편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어 무대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무대 뒤 스크린을 통해 몇몇 곡에선 가사가 비춰져서 따라 부르기에 도움이 된다. 매 곡마다 뭐라고 설명할만큼 내가 원곡들을 다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냥 듣는 것보다 후렴구를 따라 부르기에 괜찮은 곡도 상당히 많았다. 역시나 우리 관객들은 노래가 없더라도 연주 부분을 떼창하며 공연을 함께 한다. 멤버들도 상당히 만족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며, 연주 파트 떼창이 예상되는 부분에선 떼창을 유도했다.
개인적으론 공연이 중반을 막 넘긴 Dead Eyes See No Future가 연주될 즈음에 가장 열광했던 것 같다. 좌우로 압박이 엄청난데도 펜스에 지탱해서라도 과격한 헤드 뱅잉을 할 수 밖에 없다. 아… 온 몸이 젖어간다. 아니, 시작하고 10여분 지나서부터 젖었다. 2009년 주다스 프리스트 첫 내한 공연 이후 이렇게 땀 많이 흘린 공연이 있던가 싶다. 순수 헤비메탈로 이렇게 가슴 벅찬 것은 2012년 액셉트 (Accept) 이후 처음인 것 같고… 정규 순서의 마지막 곡이 We Will Rise였는데, 정말 죽을 것 같다. 헥헥. 내 옆에 있는 사람들 헤드 뱅잉에 머리카락 채찍을 맞으면서도 헤드뱅잉을 멈출 수 없어!!!
이 곡이 끝난 후에 멤버들이 무대 뒤로 들어갔을 때, 관객들이 앙코르를 연호하는 것은 예전의 여타 내한 공연보다 점점 더 약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안 나오면 정말 공연장이 무너질 것처럼 연호하고 뛰고 그랬는데… ^^ 어쨌든 멤버들이 다시 등장하고 나온 앙코르 곡은 무려 Silverwing. 2월까지 조사한 투어 셋리스트에선 빠졌는데, 우리나라에서 특히나 인기있는 곡이라 선곡되었나 보다. 기획사의 공식 후기를 보니, 한국측에서 Silverwing을 해달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하네. 난 그리 좋아하는 곡은 아니지만, 꽤나 익숙한 곡이 나오니 무척 흥분하게 되네. 제프 루미스의 그리 길진 않았지만 짜릿한 기타 솔로와 마지막 곡인 Nemesis로 그들의 공연은 끝이 났다. 페이스북에 보면 매 공연마다 마지막에 멤버들이 관객들을 배경으로 인증샷을을 찍던데, 이번에도 다같이 사진을 찍는 것 같다.
멤버들 모두 관객을 등지고 서서는...
이렇게 인증샷을 찍었다. (https://www.facebook.com/archenemyofficial)
이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좌우로 키 큰 사람들이 서고, 가운데 아담한 앨리사가 서서 다같이 인사를 했다. 크하~ 짝짝짝짝!
연사를 했더니 다들 표정이 웃긴다.
보컬 앨리사는 키는 좀 작은데 몸매가 탄탄한 것이 아주 매력적이고, 예쁘게 생겨서 제일 앞에서 보길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 예쁜 외모로는 연상이 안 되는 그라울링은 개인적으론 전임이었던 안젤라보다도 더 안정적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작은 체구에 스피커를 발판 삼아 뛰고 솟고 하는 것은, 아이언 메이든의 프론트맨 브루스 디킨슨 (Bruce Dickinson)이 연상이 되었다.
마이클 아모트와 제프 루미스의 트윈 기타는 정말 대단했다. 스피디한 곡들 사이에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딕한 기타 연주가 일품이었다. 마치 헬로윈의 트윈 기타를 보고 듣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들 음악에 관심을 갖고 들었나 보다. 두 명의 기타리스트의 솔로 파트가 적절히 배분되어서 좌우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기타리스트 제프 루미스는 합류한지 4개월쯤 된 것 같은데, 오랫동안 함께 한 멤버처럼 자연스럽고 좋았다. 이 사람이 몸담았던 이전 밴드들 음악을 좀 찾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드러머는 조명 때문에 얼굴을 잘 보지는 못 했는데, 주구장창 스피디하고 타이트한 드러밍이 일품이었다. 중간중간 얼굴이 비쳐질 때엔 무척 힘들어 보였는데, 그래도 끝까지 긴장감 만땅인 드러밍을 들려주었다. 베이스 드럼 직경은 지금껏 본 여타 해외 밴드들 중에선 좀 작은 것 같아 보이긴 했다.
멤버들이 대체로 체격이 커 보였는데, 베이시스트는 살짝 뚱띵이 같아 보였고, 마이클 아모트는 포스터 같은 데서 보이는 것보다는 퉁퉁한 느낌이다. 제프 루미스는 보기 좋게 건장한 체구였다.
멤버들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좌우 관객들 모두 잘 보이게 움직여 줘서 좁고 긴 형태의 공연장에서 어느 위치에서나 멤버들의 연주를 보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 같다. 난 처음에 중앙 살짝 우측에 자리 잡았다가 계속 밀려서 최종적으론 정중앙에서 관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공연장에서 제일 앞에서 본 것은 2008년 마이클 쉥커 그룹 (Michael Schenker Group), 2009년 미스터빅 (Mr.Big) 포함해서 세 번째였는데, 가장 힘이 들었지만 가장 역동적인 관람이었던 것 같다. 또한, 공연 중간중간에 앞에서 나보다 키 큰 사람들이 시야를 가리지도 않고, 그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느라 공연에 집중 못 하는 것도 없어서 다음에도 제일 앞 줄을 선호하게 될 것 같다. ^^
Yes24 무브홀은 처음 가봤는데, 좌우가 좀 좁긴 하지만 내장이 산뜻하고 깔끔해서 첫 인상이 무척 좋았고, 사운드도 꽤 좋았다.
신곡부터 예전 히트곡까지의 고른 선곡도 좋았고, 밴드의 헤비하고 스피디하고 멜로딕하면서도 깔끔한 연주도 아주 좋았고, 공연장도 좋았고... 오프닝 밴드가 메써드였던 것도 좋았다. 내가 제일 처음 좋아하게 되었던 Enemy Within이 누락된 것은 좀 아쉽긴 하다.
아치 에네미, 이들을 알게 되고 10여년 만에 처음 이들의 공연을 직접 보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21세기 들어서 좋아하게 된 몇 안 되는 메틀 밴드인데, 그들을 좋아하게 된 것이 멋진 선택이었음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기존 앨범들도 다시 좀 찾아 들어봐야 할 듯.
매표 통계 [출처: 인터파크]
0. Tempore Nihil Sanat (Prelude in F minor)
1. Never Forgive, Never Forget
2. War Eternal
3. Bury Me an Angel
4. Stolen Life
5. Ravenous
6. Taking Back My Soul
7. My Apocalypse
8. You Will Know My Name
9. Bloodstained Cross
10. Burning Angel
11. As the Pages Burn
12. Dead Eyes See No Future
13. The Day You Died
14. No More Regrets
15. No Gods, No Masters
16. We Will Rise
Encore:
17. Silverwing
18. Guitar Solo (by Jeff Loomis)
19. Snow Bound
20. Nemesis + Fields of Desolation (Outro)
99. Enter the M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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