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음악 페스티벌이 지방에서도 열린다.
락페만 모니터링하고 있던 내가 포항 칠포 재즈 페스티벌을 알게 된 것은 작년에 내한한 네덜란드 재즈 가수 바우터 하멜(Wouter Hamel)의 공연 때문이었다. 서울 공연 후에 포항의 재즈 페스티벌에 간다는 것이다. 바로 검색해서 페이스북에서 칠포 재즈 페스티벌 페이지 팔로우 시작.
하멜이 작년 포항에서 재미있게 놀다 간 것 같다 정도만 알고 있던 올해 여름... 올해 칠포 재즈 페스티벌 라인업이 공개되었을 때, 난 잘못 본 줄 알았다. 3일 간의 공연 중, 마지막 날 중간에 떡하니 '티스퀘어'가 있는 것이다.
이게 그 T-Square 맞는 거지? 일본의 그 유명한 퓨전 재즈 밴드 티스퀘어가 올해 포항에 온다는 것이다. 티스퀘어를 한글로 써놔서 더 긴가민가 했다구! 같은 날에 박주원 밴드와 말로도 잡혀 있고, 헤드라이너는 자우림이랜다. 헐.
울산 사는 빈이 아빠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티스퀘어가 포항에 와 오노?"란다. 둘다 너무나도 보고 싶어하는 팀이라 9월달 일정 확인해가며 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미치도록 더웠던 여름 날씨도 9월이 되니 가을답다. 포항으로 가서 공연을 보고 하루 자고 올라오려 했는데, 차편이 애매해서 그냥, 다섯 팀 중에서 티스퀘어까지만 보고 올라오는 쪽으로 계획을 세우고 차편을 예약했다.
지방을 가면 어지간하면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이번엔 멀어서 KTX 타고 가기로 했다. 수년 전에 대구에서 올라올 때 KTX 타본 적 있긴 한데, 왕복을 모두 KTX 타는 건 처음이다. 포항가는 노선은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비교적 널널하게 내려갔다.
도착해서 울산에서 온 빈이아빠 만나서 일단 공연장이라는 칠포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한 15분에서 20분 걸렸나? 꽤나 외진 곳인 것 같다. 도착해서 주차하니 3시 40분쯤 되었나? 아마도 박주원이 리허설 중인가보다. 정교하면서 강렬한 어쿠스틱 기타 소리 죽이네!
그런데, 입장 줄이 꽤나 기네? 일단 표부터 바꾸는데, 생수 하나와 비옷을 하나씩 나눠준다. 비가 안 오길 바라는데, 비가 아주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아~ 하필…
일단 점심을 안 먹어서 공연장 앞 식당 한 군데서 회덮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오는데, 어라… 비가 아까보다 조금 더 온다. 게다가 바람이 상당히 분다. 아, 안 좋아. 공연장 입구 쪽으로 가니, 줄이 하나도 없다. 아하. 4시부터 입장이어서 다들 들어간 거다. 우리도 딱히 할 일이 없어 입장해서 보니, 아… 공연장이 무대 가까운 데서부터 ‘스탠딩 – 잔디 – 의자’ 순으로 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잔디 구역에서 자리 펴 놓고 구경하려고 일찍 줄을 섰나 보다. 잔디 구역은 거의 다 찼다. 그런데, 비가 조금씩 많이 오네. 에헤… 일단 맥주 한 잔 들고 입구에서 인증샷 하나 찍고 시작!
비가 조금씩 오길래, 우리는 공연장 사이드(위의 사진의 왼편)에 마련된 천막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맥주 마시며 기다렸다. 어지간하면 무대 앞쪽으로 가고 싶은데, 비가 조금씩 굵어지고 바람이 세진다. 어, 조금 있으면 박주원 밴드 공연 시작인데… 무대 쪽에서도 분주해지더니, 무대 위에 천막을 친다. 그러면서 정시에 시작하지 못하고 5-7분 정도 늦게 시작한 것 같다.
하여간, 박주원 밴드가 무대에 올라왔다. 우리는 비도 오고 하니 그냥 천막에서 보는 걸로. 비가 오니까, 사람들이 천막 안으로 많이 들어와서 많이 산만하다. 쩝. 그 와중에 박주원 밴드의 연주는 정말 기가 막히다. 집시 음악을 표방하는 박주원은 어쿠스틱기타를 핑거링으로만 연주하는데, 그 정교함과 파워가 정말 일품이다. 난 2011년 봄에 우리 나라 기타리스트들이 주축이 되어 게리무어 추모 공연을 연 적이 있는데, 그 때 처음 박주원을 봤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박주원은 게리무어의 어떤 곡을 집시풍으로 어쿠스틱 편곡을 하여 연주했었다. 내가 어쿠스틱 기타에서 기대하던 모든 것, 어쿠스틱에서의 그 날(raw) 것이 정교하면서 강렬하게 연주되는 것에 완전 넋이 나가서, 이후 그의 연주 앨범들을 구입하고 활동을 팔로우하게 되었다. 그 다음 해의 12G신 공연에서도 봤지만, 정작 그의 곡으로 구성된 공연은 본 적이 없어 늘 아쉬워했는데, 이번이 딱 걸린 것이다. 가까이에서 보지 못 해서 완전히 집중하기 힘들었던 것이 아쉬웠다. 비가 이렇게 계속 올 건가? 아휴… 어쨌든 기타 조금 깨작대는 빈이 아빠도 그의 연주가 굉장히 인상적이긴 했나 보다. 1번 타자였던 박주원은 앞으로 나올 팀들에 대해 소개도 잊지 않으면서, 자기도 티스퀘어에 대단히 큰 영향을 받았다면서 그 공연이 너무나 기대된다고 한다. 마지막 곡을 축구 선수 박지성 헌정곡인 Captain No.7으로 마무리했다. 다음에 정말 좀 더 좋은 환경으로 다시 봐야해!!!
다음은 ‘클럽M’이란 팀인데, 비가 조금 잦아드는 것 같아서 천막 밑에서 나와서 화장실 갔다가 무대 앞쪽 스탠딩 구역으로 이동을 했다. 세번째 순서인 티스퀘어 공연에서 조금 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다행이 우리가 스탠딩 구역으로 갔을 때부터는 비가 거의 그쳤다. ‘클럽M’이란 팀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만든 재즈 프로젝트인 것 같다. 클래식 명곡, 혹은 재즈 명곡들을 자기네 악기 구성에 맞게 재편곡해서 들려주었는데, 세련되고 깔끔한 연주로 꽤나 좋았다. 특히나 연주자들이 모두 자기네들이 흥에 겨워 연주하는 모습에 관객들도 같이 즐거웠던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다만, 50분 할당 시간이 약간씩 길어지는 것이 괜히 불안하다. 마지막 곡은 최근에 크게 인기있었던 영화 ‘라라랜드’의 곡을 연주해서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끝냈다.
비 때문에 첫 팀부터 조금씩 늘어진 공연 시간이 티스퀘어 때엔 좀더 영향을 받아서 티스퀘어는 예정 시간보다 거의 30분 가까이 늦게 시작했던 것 같다. 주변은 티스퀘어를 엄청 기다리는 팬들과 그 다음 팀들인 ‘멜로망스’와 ‘자우림’ 때문에 앞쪽에 온 두 부류였던 듯하다. 티스퀘어 때 스탠딩 쪽은 특히나 실용음악 전공하는 듯한 학생들이 많이 포진한 것 같았다.
하여간, 티스퀘어의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음악이 깔리기 시작한다. 우워~~ 두근두근. 멤버들이 무대에 등장하는데, 티스퀘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대표 인물인 비니 쓰고 색소폰을 든 이토와 살짝 긴 백발을 휘날리며 스트랫 기타를 들고 있는 안도는 그냥 카리스마 작렬! 그리고, 두 명의 젊은 정규 멤버(드럼, 키보드)와 객원 베이스 연주자까지 5인조.
첫 곡 시작부터 “이거 현실이냐?” 수준의 반응들. 경쾌한 퓨전 재즈인데, 그냥 멤버 전원이 정교함의 극치인데, 그게 너무나 딱딱 맞아 떨어지는데 그게 결코 부담스럽지 않고 엄청 여유롭게 들리는 것이 이 사람들의 내공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다. 올해 발표된 신곡인데도 마치 익히 아는 듯이 다같이 흥얼거릴 수 있는 것도 신기하다. 첫 곡부터 각 파트 별로 짧게 솔로도 넣어 편곡했는데, 그냥 감탄이다. 주변 관객들도 모두 첫 곡부터 다들 뿅 갔다. 나랑 빈이 아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 감탄사 연발한다. 첫 두 곡에서 완전 눈에서 하트 뿅뿅이 되어 있는데, 이토 상이 마이크를 잡고 멘트를 한다.
“(우리말) 여러분~ 안녕하세요. 티스퀘어이무니다. 여러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왕~ 상당히 유창한 우리말로 인사한다.
“(우리말) 티스퀘어 멤버를 소개하겠습니다."
반도 사토시: 드럼
다나카 신고: 베이스
카와노 케이조: 키보드
안도 마사히로: 기타
이토 다케시: 색소폰, EWI
야, 이 아저씨 우리말 연습 꽤 많이 했겠다. 물론 커닝도 하는 것이겠지만, 이 정도 성의까지 보여줄 줄이야.
멤버들 소개를 쭉 하는데, 역시나 기타리스트 안도 상 소개할 때 가장 큰 박수가 나왔다.
“(영어) 플리즈 엔조이 아와 쇼~”
그러면서, 또 잘 모르는 곡 연주. 나중에 찾아보니 이 곡도 신보 수록곡이었다. 약간 조용한 곡이었는데, 하~ 좋다. 바로 이어지는 곡은 드럼 연주가 시작하자 마자 큰 환호성. 나도 많이 들어본 ‘Sunnyside Cruise’이다. 메인 멜로디 부분이 너무 반갑고 좋아서 입으로 빠빠 거리며 따라 부르는 건 나 뿐만 아니었다. ‘너무 좋다’를 넘어서 울컥하기까지 한다. 참내, 티스퀘어 곡에 맞춰 떼창을 하게 될 줄이야.
“(우리말) 감사합니다. (영어) We have big information for you. I need help. 김 상”
어느 여성 분이 올라와서 내년 3월 23일에 서울에서 단독 내한 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와~~!!!
“(우리말) 여러분 많이 와주세요”
“(영어) Let’s continue. 다음 곡은 Mr. 안도의 곡입니다. Trap it”
역시나 새 앨범 수록곡. 미드 템포의 세련되게 그루브 감 넘치는 곡. 중간에 베이스 솔로를 하는데, 과하지 않으면서도 화려하고 … 아… 말로 표현이 안 된다. 그냥 다 멋있어. 멤버들 중에 베이시스트가 가장 액션이 많아 시종일관 보는 사람도 신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살짝 빠른 템포의 다음 곡부터는 이토가 색소폰이 아닌 EWI(Electronic Wind Instrument)라고 입으로 부는 악기인데 일렉 악기인 윈드 컨트롤러를 불기 시작했던 것 같다. 키보드와는 다른 신기한 소리가 난다. 이 곡에서도 각 파트별 솔로가 있었는데, 기타의 쫀득하면서 정교함. 다른 악기들 연주하는 사이사이에 드럼 박자를 살벌하게 쪼개 넣으면서 솔로처럼 연주하는데 기가 막히다. 그냥 다섯 명의 멤버를 보느라 눈이 너무 바쁘다.
세 곡을 연속으로 연주한 후에 다시 멘트.
“(일어) 도모 아리가토~ (우리말) 여러분 최고에요~ {와~~~} 최고에요~! {와~~~} 감사합니다”
우리 말 멘트도 너무나 재밌게 한다.
별 다른 설명 없이 바로 연주 시작하는데, 분위기 예사롭지 않다. 들어본 곡이다! Omens of love.
빠라라~ 빠라라~ 연주에 맞춰 우리는 박수치며 떼창. 그 부분에서 베이시스트는 제자리에서 깡총 뛰는 액션을 한다. 너무나도 재밌어~!
다음 곡이 바로 이어지는데, 드럼 박자에 맞춰 박수 치는 중에 연주 터지는데 엄마야~~~ Truth다. 거의 모든 멜로디를 관객들 모두 흥얼거리다가 군데군데 ‘어이! 어이! 어이!’를 외치며 주먹으로 하늘 찌르기 등 분위기가 메탈 공연 못지않다. 이 때쯤인가, 거의 제자리에서 연주하던 안도 상이 무대 거의 끝단까지 나와서 기타를 연주하는데, 밤바람에 머리 날리며 연주하는 모습이 진짜 도인이라 할 만했다.
이 곡을 마지막으로 1시간 좀 안 되는 티스퀘어의 공연이 끝났다.
“(우리말) 여러분, 감사합니다”란 인사를 끝으로 티스퀘어는 무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극도로 흥분한 관객들은 앙코르를 외쳤지만, 다음 순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은 무대 뒤로 사라졌다.
아마 연주만으로 이루어진 공연 보면서 이렇게 시종일관 감탄한 공연이 있었을까 싶다. 1시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대박’, ‘진짜 멋있다’, ‘장난 아니야’였을 거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끊이질 않았다. 내가 이런 표현 거의 쓴 적 없는데, ‘진짜 개쩔어!’ 마지막 10여분은 거의 락이나 메탈 공연 못지않게 흥분하고 난리 친 것 같다.
재즈라 하면 괜히 어렵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없지 않은데, 이들은 그 재즈스러움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뛰어난 연주력으로 쉽게 풀어내어 이 바닥에서 최강자 중 하나로 40여년 간을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앨범도 거의 1년에 한 장씩 내고 있어, 이번 공연에선 전체 아홉 곡 중에 무려 세 곡을 신곡으로 셋리스트를 채우는 과감한 선곡도 아직 활발한 활동하는 팀임을 증명해 보였다 하겠다.
기억나는 주변의 감탄들...
"개 멋있다" "아, 개 잘 해~" "아, 진짜 잘 한다." "진짜 눈물난다" "미치겠다, 너무 좋아서" "연예인의 연예인" "속이 시원하다"
이렇게 세 팀의 공연을 보고 기차 시간 때문에 공연장을 떠났다. 포항역에서 간단하게 요기하고 기차를 탔는데, 무척 낯이 익는 사람들 무리가 내가 탄 칸에 타는 거다. 누구더라... 헉. 박주원 밴드가 같은 차에 탄 거다. 박주원에게 인사하고 아까 끝내줬다고 엄지 번쩍했다. 같이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공연하고 힘들었을 것 같아서 사진은 다음 기회에... 아마도 나처럼 티스퀘어 공연 보고 바로 나온 듯하다.
이렇게 멀리 포항까지 가서 공연을 봤다. 비록 포항의 변두리 해수욕장에서 한 공연이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동네 주민들인 듯한 분들의 자원봉사자들이 적시 적소에 나타나서 도움도 주고, 정리도 바로바로 하셔서 환경도 깔끔했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라인업의 음악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티스퀘어의 공연은 정말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고, 공연을 보고 난 며칠이 지난 오늘(수요일)까지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다음에 또 멋진 공연을 기다리면서 이번 후기는 여기서 끝~
티스퀘어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스탭이 찍은 듯한 사진. 저 왼쪽 어딘가에 내가 있을 텐데, 못 찾겠다.
[출처: T-Square & Staff page @ facebook]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에 셋리스트도 있어서 퍼왔다. 1, 3, 5번이 무려 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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