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에 등장하여서 지금까지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 두 펑크 밴드, 크라잉넛과 노브레인.
펑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두 밴드의 성향이 꽤나 달라 나는 노브레인 쪽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리고,공연을 볼 기회도 크라잉넛은 지금껏 없기도 했다.
지난 11월 11일 수요일에, 원래는 속주 기타리스트의 제왕인 잉베이 맘스틴 내한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어영부영하다가 표가 매진이 되어서 못 보게 되었다. 그렇게 아쉬워하던 차에 판교에 있는 한 클럽에서 크라잉넛의 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서 보게 된다. 오옷!
일단, 클럽 공연이라는 걸 처음 보는 것이고, 집에서 멀지 않은 판교에서 한다는 것도 좋다!
예매를 하고 퇴근 후에 판교로 이동. 위치는 판교 H스퀘어라는 건물의 지하라고 한다.
판교에서의 공연은 몇 년 전에 거리 광장에서 It's Rock Festa라는 행사가 2회 있었는데, 그 이후에 같은 장소에서 아이돌 그룹이 온 공연에서 큰 사고가 있어 그 이후엔 거리 공연이 없어진 상태. It's Rock Festa도 꽤 재밌는 공연이었는데... 그 공연 생각하니 올 여름에 사고로 세상을 뜬 브로큰 발렌타인의 보컬 '반'이 떠올라 슬퍼지네요. 정말 끝내주는 친구였는데...
2012/09/07 - [문화 文化 Culture/공연 중독] - 2012.09.06. It's Rock Festa @ 판교 예술의 거리
2013/04/27 - [문화 文化 Culture/공연 중독] - 2013.4.25. 판교 It's ROCK Festa Vol.2
어쨌든, 처음 찾아간 클럽.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바로 보이는 작은 술집.
아마도 공연 때문에 실내에 있던 테이블 몇 개를 밖으로 빼 놓은 듯.
팔목에 이용권을 채워준다!
사무실 건물의 지하 상가의 한 공간 중 하나인데, 여긴가 싶어 살짝 안을 들여다 보니 작은 공간에 무대가 보이고 거기에 크라잉넛의 로고가 보였다. 아, 여기구나. 카운터에서 예매 확인하고, 기본 제공되는 음료로 생맥주 한 잔을 받아서 무대 앞으로 가봤다. 작은 호프 같은 곳에 1/4 정도 되는 면적이 살짝 높아서 그 쪽이 무대가 되고 나머지 공간이 관객의 공간인데, 그 사이에 높이가 좀 높은 테이블이 놓여져 있고 가운데는 통로 삼아 열려 있는 배치.
평소엔 그냥 조용할 듯한 카페 및 호프 정도일 텐데, 공연이 있는 날은 배치를 바꿔 공간을 확보하는 것 같았다. 맥주를 홀짝거리며 관객들을 보니, 퇴근하고 온 듯한 양복입은 젊은 친구들 두어 명이 보이고 젊은 아가씨들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주변에 근무하는 친구들인가? 판교 테크노밸리가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이 곳 주인이 대학교 친구의 서울 과학고 후배라더니, 아마도 대기업 다니다 그만 두고 나와서 하는 것인가 보다. 어떤 젊은이 둘이 오더니 '그룹장님'이란 호칭으로 사장인 듯한 사람과 인사를 나눈다. 흠.
공연이 시작하기 조금 전에서야 나보다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분 한 분이 오시네. 음냐. 난 테이블과 의자 밀어놓은 뒤쪽에 가방과 짐, 맥주를 두고 그 앞에 살짝 기대어서 공연을 기다린다. 앞엔 젊은 친구들이 쭉 서있어서... 그래봤자 내가 3열... 큭큭. 배경음악은 계속 쌍팔년도 락음악이 나오더니, 막판엔 Hear'N'Aid LP를 계속 틀었다. 햐~ 참으로 오래간만에 듣네.
7시 15분쯤이었을까, 복도에 멤버들이 기웃거리는 것이 보인다. 무대에 올라가니 멤버들한테도 맥주를 한 병씩 준다. 앞에 있는 한 아가씨가 '원샷!'을 외치니 덩치가 제일 큰 키보드 김인수가 'IPL은 원샷 안 해요'란다. 큭큭.
아코디언의 느릿느릿한 살짝 구닥다리스러운 멜로디를 연주로 시작하더니, 마구 달리는 펑크 연주가 이어진다. 우왓! 신난다! 헤드뱅잉이 절로 되는구나~ 이게 인트로였나보다. 그러더니, '서커스 매직 유랑단'이란 곡이 시작한다. 이들의 그룹송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게 스튜디오 앨범으로 들을 때랑은 완전히 다르구나. 진짜 신나고 처음부터 에너지가 팍팍! 전해진다. 그리 많지 않은 관객들이지만, 다들 뛰고 춤추고 신나네. 바로 이어지는 곡은 '마시자'. 오늘 마시고 취해서 다들 네 발로 걸어나가자면서 관객들과 함께 소릴 지른다. 키보드 김인수의 피리 소리로 시작하는데, 야, 이 곡도 완전 신나는구나. 펑크 밴드라 해서 단순하다고 생각했는데, 드럼도 타이트하고 짝짝 맞아 들어가는 연주가 아주 편하면서 놀기 좋네. 랄랄라 같이 소리 지르면서 헤드뱅잉.
두 곡을 연속으로 달리고 나더니, 기분 좋냐고 묻고는, 자기네도 기분이 좋단다. 기타 이상면의 다시 돌아온 첫 컴백 공연이라네. 기타 이상면이 아파서 두달간 입원을 해있었단다. 소감을 물으니 '건강이 최고에요. 돈은 버는 족족 다 써버려야 해요'란다. 하하. 다음 곡은 건강을 위해서 '룩셈부르크'를 하겠단다. 관객들과 함께 룩셈부르크를 외치며 시작한다. 한참 전에 부서 회식 때, 한 직원이 이 노래 불러서 뭐 이리 웃긴 곡이 있냐 했는데, 이거 라이브로 부르니 유치 찬란하지만 완전 재밌다. 관객들에게 한참 부르게 하다가 여자들만 섹시하게 부르란다. 그러면서 베이스 한경록 혼자 므흣한 소리 내면서 노래한다. 하하. 이 곡에서였나? 베이스 한경록이 무대 아래로 내려와서 관객들 사이 (내 바로 앞에서!) 막 휘졌고 다니다 올라갔다.
'오늘 온 여자들이 다 예뻐 보여요. 내가 취했나?', '매일 취했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하더니, 키보드 김인수가 공연 전에 맥주를 마시고 왔다면서 '가격 대비로는 크라프트 비어가 짱이구만. 막걸리를 마신 것처럼 취하는구만'이란다. 하하. 얘네들 진짜 웃겨. 이어지는 곡은 조금 조용한 곡이었는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명동 콜링'이라나 보다. 멤버들이 모두 노래를 하니 조금 조용한 곡이지만 풍성한 것이 좋다. 야~ 계속 감탄이 나오는 중.
기타리스트 쪽 마이크가 안 나온다며, 보컬 박윤식이 '이쪽 마이크 ㅈ됐어요~'란다. 풉.
로맨틱한 곡하겠다면서, 베이스 한경록이 관객들에게 코를 푸는 시늉을 하고 장난을 친다. 다음 곡은 좀 생소한데, 제목은 검색해보니 '새'라네. 이 곡도 비교적 조용한 곡인데, 중간에 기타 솔로가 쫀득쫀득한 것이 좋았다.
기타 이상면은 아직 체력이 다 회복이 안 되었는지 중간중간 뒤의 스피커에 걸터 앉아 연주를 하기도 했다.
드럼 이상혁: '맥주가 맛있어서 취하는 줄 모르겠네 (한모금 마시고) 하나도 안 취하네'.
키보드 김인수: '저는 다 마셨는데, 제 것 좀...'
기타 이상면: '여섯달동안 술을 끊었었어요. (드럼 이상혁: 꿀맛이겠군) (한모금 마시더니) 우앗. 써!'
하하. 멤버들이 정말 술을 좋아하는 듯.
자기네가 얼마 전에 호주 갔다 와서 시차적응이 잘 안 된다면서 (으잉?), 영어 노래를 하겠단다. L.E.G.O. 코러스가 '레고'를 반복하는데, '레~고레~고레~고'로 반복을 하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된다. 잘 모르는 곡이지만,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건 따라할 수 있네. '여러분 정말 영어를 잘 하시네요~' 하하. 이런저런 농담 한참 했다. 이 친구들 나이가 대부분 마흔 쯤 되는데도 무슨 애들 농담하는 것 같다.
다음은 '비둘기'라는 살짝 슬픈 듯하게 시작하는 곡이었는데, 바로 무지 빠르게 '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를 부른다. 그리고는 조금 후에 키보드 김인수가 아코디언을 들고, 장소가 협소하다면서 무대와 관객들 사이에 있는 테이블에 걸터 앉아서 헤비메탈스럽게 노래를 몇소절 불렀다. 오~ 재밌어.
그리고는, 보컬 박윤식이 '우리, 직장에서의 분노를 담아서 같이 불러요. 에이 씨X' 다같이 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를 외치는데, 이거 되게 어려운데 무지 재밌다. 곡이 끝나는 것 같더니, 키보드 김인수가 마이크를 들고 무대 아래로 내려와서는 관객들 사이에서 헤비메탈 스타일로 노래를 한다. 우하하. 베이스 한경록도 같이 내려와서 같이 휘젓고 올라간다. 분노의 샤우팅을 하더니 마이크를 입에 한번 넣고는 던져버렸다. 그 바닥에 떨어진 마이크 옆에 베이스 한경록은 드러누워서 곡을 마무리했다. 보컬 박윤식은 '저걸 나보고 쓰라고?'라며 투덜거린다. 하하.
돌아오는 주말에 도쿄 공연이 있다면서, 니혼고 노래를 하나 하겠단다. 전에 닌텐도 NDSL로 게임할 때 '응원단'이던가 게임에 수록된 곡 중 하나였던 것 같은 곡인데, '링가링가~(사실 린다린다였다)'라는 후렴구가 있던 곡을 한 것 같다. 한 아가씨가 '아리가또~'라니 '야메떼'로 대답하는 밴드.
조용한 '안녕'이란 곡을 하고서는, 흥겨운 리듬의 '안녕 고래'가 이어졌다. 흔들~흔들~ 방방. 거의 막판에 속도를 높여 연주하는 부분에서는 잘하는 헤비메탈 밴드 못지 않다. 오~
'힘들어요? 힘들죠?'
'아뇨~'
'판교는 땅값 오르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죠?'
'월세에요~ (와글와글)'
'거품은 맥주만 있으면 되요'
난데없이 키보드 김인수 '이 맥주 바꿔주시면 안 되요? 프랑스는 와인이나 만들지. (보컬 박윤식이 자기 맥주와 바꿔줌) 감사합니다. 판교에서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삼국지 장판교 전투 이야기 한참 하더니) 그 판교와 여기는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너희 삼국지 안 읽어 봤지? (관객 일부: 읽어봤어요~~~) (맥주 원샷하고는) 더 이상 오줌 마렵기 전에 빨리 끝내겠습니다.'
꿍짝꿍짝! 속도감 있는 뽕짝 같달까? 각 파트의 연주들이 다들 몇번씩 귀에 쏙쏙 꽂히는게 아주 멋졌다. 가사도 개xx, 소xx, x발새x ... 좀 15금스러운 가사였지만, 속도감과 훌륭한 연주에 완전 멋졌다. 이 곡에서 내 옆에 있던 키가 아주 큰 청년이 방방 뛰고 휙휙 돌다가 중심을 살짝 잃어서 무대 제일 앞 중앙에 있던 아가씨와 함께 넘어졌다. 다행히 테이블이 없는 사이에 있었던지라 무대 앞으로 넘어지긴 해도 크게 다칠 정도는 아니었다. 노래 끝나고 멤버들이 괜찮냐고 묻더니, 이 참에 두 분이 솔로면 연락처를 교환하면 좋겠단다. 하하.
마지막 곡, 말달리자~!!!
으아!!! 드디어. 내가 이 공간에 있게 한 바로 그 곡. 처음 이 노래 들었던 대학교 때, 이런 골때리는 노래를 만들다니 하면서 감탄했던 것 같다. 정말 죽어라 외치고 헤드뱅잉을 할 수 밖에 없네.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말~ 달리자~' 야, 이거 직접 들으니 정말 타이트함이 일품이네. 기대했던만큼 훌륭했다.
잠깐 조명이 꺼지고는, 한숨 돌리고 다시 불이 켜진다.
돌아가면서 각자 소감을 짤막하게...
베이스 한경록: '난 제가 너무 좋아요'
드럼 이상혁: '앵콜하고 화장실 갈까요, 화장실 갔다 와서 앵콜할까요?'
기타 이상면: '아까 저녁으로 함박스테크 먹었는데, 정말 졸X 맛있어요' (관객들 일부: 양이 적어요~)
키보드 김인수: '오늘 뜻깊은 날이었고요, 농업인의 날을 축하합니다, (어쩌고저쩌고) 맥주는 너희들이 사주겠지...'
보컬 박윤식: '저는 이상면이 돌아와서 제일 좋아요'
밤이 깊었네~ 야~ 이 곡이 이렇게 마지막 곡으로 적격일 줄이야. 분위기 참 좋게 마무리되는구나. 보컬 박윤식은 아예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노래한다.
약 70분 가량의 공연이 끝났다. 작은 공간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멤버들과 관객들이 함께 인사하고 사진찍고 얘기나누고 화기애애하게 어울리게 되네. 멤버들도 밝은 모습으로 그 분위기를 함께 하는 모습이 참 좋네.
처음으로 크랑이넛의 공연을 보았고, 클럽 공연을 보게 되었다.
크라잉넛이란 밴드가 20년이 넘게 장수할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직 철이 안 든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고 음악을 즐기고, 관객들과 함께 그 즐거움을 공유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단순한 듯함 속에 느껴지는 찰진 연주 등등 모든 것이 잘 조화롭게 운용되는 팀이었다. 키보드에 독특하게 아코디언, 피리까지 적절히 넣어 그들만의 개성이 있는 스타일의 음악들도 참 좋았다. 정말 똘끼 충만한 모습이 마흔이 되어서도 그들을 아직 젊은 애들처럼 느끼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았다. 그냥 대충 들어왔던 그들의 음악이 라이브를 통해 제대로 느낄 수 있언 것도 정말 좋았다.
그리고, 커먼 키친이란 공간은 정말 자주 오고 싶어졌다. 이래서, 클럽 공연이라는 걸 보러 다니는구나 싶었다. 멋진 공연을 맥주 한잔 하면서 즐기는 재미가 정말 좋아서 홍대까진 못 가더라도 종종 가게 될 것 같았다. 이 날엔 바로 귀가를 했지만, 다음엔 아티스트들과 맥주도 한잔 하면서 얘기도 나누고 싶었다.
역시나 오래 사랑 받는 아티스트는 라이브에서 절대 후회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기분 좋고 에너지 넘치는 공연이었다.
[SET LIST]
1. 서커스 매직 유랑단
2. 마시자
3. 룩셈부르크
4. 명동 콜링
5. 새
6. LEGO
7. 비둘기
8. 린다린다(リンダリンダ, 일본곡, The Blue Hearts 원곡)
9. 안녕
10. 안녕 고래
11. 지독한 노래
12. 말달리자
13. (앙코르) 밤이 깊었네
[멤버 - 위키백과 참고]
박윤식 (보컬 & 기타, 1976년 12월 20일생)
이상면 (기타, 1976년 3월 6일생)
이상혁 (드럼, 1976년 3월 6일생)
한경록 (베이스, 1977년 2월 11일생)
김인수 (키보드, 1974년 11월 17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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