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文化 Culture/음악 감상

34년 만에 오디오 앰프 교체한 이야기 - 데논 DRA-900H

미친도사 2026. 3. 22. 13:06

대학교 1학년인 92년에 1년간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좀 좋은 오디오를 사고 싶었다. 요즘처럼 청음실이 있는 오디오샵을 있었는지도 잘 모르던 때라, 무턱대고 하이텔의 하이파이 동호회 시삽(운영자)에게 '이런이런 음악을 즐겨 듣고, 예산은 얼마다' 메일을 보내 문의했었다.

 

그랬더니, 인켈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고, 스피커는 JBL 4312, 턴테이블을 해태 전자 제품을 추천해 주었다. 그리고, 세운상가에서 각 제품들을 살 수 있는 도매점을 알려주었고, 하이파이 동호회 추천이라는 말을 하라고 했다. 12월 말일 즈음(내 기억은 12월 29일이나 30일 쯤)에 어머니랑 세운상가를 가서 이것저것 산 기억이 있다. 무거우니까 배달을 시켰고, 턴테이블만 들고 왔던 것 같다.

 

기본이 되는 인켈 시스템. 나무 장식장은 한참 후에 공방에서 만든 거다.
현재 턴테이블과 스피커 놓인 모습

 

 

그러던 차에 90년 대 말에 홈씨어터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 스피커를 프론트로 하는 구성을 알아보곤 했다. 그런데, 당시 많은 글들에서 이 스피커를 울려줄 만한 AV 리시버가 잘 없다는 거다. 그냥 AV 시스템을 별도 구성하는 게 낫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래서 2000년대 초에 가성비 조합으로 유명했던 아남 ARV-6000 리시버에 크리스 600 시리즈로 조촐하게 홈씨어터를 시작했다.

 

결혼하고 애들이 커가면서 마루에서 홈씨어터로 영화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부피가 컸던 ARV-6000 리시버를 처분하고, 더 소형인 셔우드(인켈의 수출 브랜드) AD-3103 리시버를 들여서 PC 기반의 시스템으로 연명을 했다. 마루에 있던 오디오 시스템은 한동안 애들 동요 듣는데 쓰였고, 내 음악은 어쩌다 한번 듣는 수준이 되었다.

 

PC 기반의 홈씨어터 시절

 

세월이 흘러 아이들도 고등학생이 되고 집도 몇 평수 큰 집으로 오면서, 마루에 오디오도 놓고, 홈씨어터도 제대로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기 즈음해서 우리 집에 강아지 뽀리가 왔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굿즈를 목에 차고 포즈 취하는 뽀리

 

하루는 작정하고 온 가족이 극장에서도 너무나 재밌게 봤던 영화 '덩케르크' 블루레이를 홈씨어터로 보기 시작했다. 영화 초반의 총격 신에서 온사방에서 울리는 총소리에 뽀리가 놀라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짖었다. '이제 홈씨어터는 우리 집에서 어렵겠구나 😢'. 이렇게 약 20년간 유지했던 홈씨어터 장비를 갑작스럽게 처분했다.

처분할 당시 DP의 중고 장터 게시판에 올릴 때 찍어둔 사진.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플삼으로 운영

 

그러면서, 옛 인켈 장비에서도 라디오와 CDP를 처분했다. CDP는 가끔 썼긴 한데, 오래 되어 내부 구동 벨트가 종종 끊어져서 직접 교체하곤 했는데, 블루레이 플레이어(이하 BDP)로 쓰던 플레이스테이션3도 처분했기도 해서, BDP와 CDP를 겸용으로 쓸 만한 제품을 알아보곤 야마하의 BD-S681이란 모델을 들여서 시스템을 간소화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리모콘조차 없는 구형 오디오 시스템은 뭔가 듣는 게 번거로웠다. 그렇게 마루 오디오에서 음악 듣는 게 1년에 손꼽을 만큼 적어지게 된다. 마루 TV로 유튜브로 음악 영상을 많이 보지만, 그것도 그냥 TV 스피커로 듣는 환경으로 지내게 된다.

 

그러다 2020년 즈음에, 독일 Sonoro사의 디지털 하이파이 앰프 마에스트로(Maestro)가 힘이 좋으면서 JBL 4312 계열과 궁합이 좋다는 글을 접했다. 당시 국내 가격이 230만 원가량. 부담스러웠지만 연말정산 등을 노려보려 했는데, 코로나 여파로 전자제품 가격과 유로화가 오르며 최근 가격은 290만 원대까지 뛰었다.

나를 다시 오디오에 관심이 생기게 한 Sonoro Maestro. 산뜻한 디자인도 한 몫했다

 


그렇게 소노로를 포기하긴 했는데, 뭔가는 바꾸고 싶어서 제미나이와 긴 대화를 나눴고, 내 방향성과 잘 맞는 야마하 R-N1000A라는 모델을 찾았다. 하지만 국내 오디오 샵 어디에도 재고가 없었다. 야마하 코리아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야마하가 한국 시장에서 오디오 사업을 접었단다. 😒

 

요모조모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야마하 R-N1000A

 


하~ 다시 제미나이와 대화. 다음 추천은 데논(Denon)의 DRA-900H였다. 사실 요즘 가성비로 주목 받는 Class D 앰프들보다는 전통적인 구동 방식이라는 Class A/B 타입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4312A처럼 덩치 큰 구형 스피커에 더 어울린다 하겠다.
다른 추천도 있었는데, 요모조모 따져보니 내 환경엔 데논이 더 맞았다.

 

아, 또 하나. 여전히 '이 앰프가 JBL 스피커와 잘 맞을까?'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는데, 구글에서 jbl 4312 with dra-900h를 검색하면 이 JBL 4312G와 이 DRA-900H 조합으로 팔고 있는 오디오 쇼핑몰이 꽤 많이 검색되는 데서, 이 조합이 꽤 괜찮다는 걸 알 수 있어 구입을 결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가격도 100만 원 미만. 약간의 고민 후에 주문했고 지난 주말 드디어 도착했다. 주중에 조금씩 세팅하며 이제 얼추 익숙해졌다.

 

디자인은 너무나 정통 오디오 디자


스피커 케이블도 카나레 4코어짜리로 주문해서 설치를 마무리했다. 스테레오 앰프지만, 데논의 리시버 라인업으로 되어 있어 HDMI 입력이 많은 것도 마음에 든다. TV, 블루레이 플레이어, 구글 크롬캐스트까지 연결했다.

 

리시버 라인업이라 HDMI 입력이 많은 것도 나한테는 더 적합한 앰프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데논의 정통 하이파이 라인업이 아닌 리시버 라인업 중 드문 스테레오 모델이다. 그래서인지 멀티 채널보다 힘이 좋고, 소리에 착색이 없는 느낌이다. 옛 인켈 장비도 당시엔 상당한 상급 제품이었지만, 30년 넘는 세월 동안 기술이 얼마나 좋아졌겠는가.

 

처음 들어본 몇 가지 음악들 느낌을 메모해 둔게 있어 적어보면 ...

  • Adele - Hello
    미세한 목소리의 떨림이 있어서 좀 당황스러웠는데 이내 편해졌다
  • Metallica - Master of Puppets
    에너지보다 소리가 너무 섬세해서 당황스럽다 해야 하나? 메탈리카가 이리 섬세했었나. 😆
  • 영화 덩케르크
    뽀리를 놀라게 해서 우리 집에서 홈씨어터럴 쫓아낸 장본인인 영화. 같은 장면에서 뽀리는 옆에서 자고 있다.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소니 스튜디오 헤드폰 MDR-7506을 처음 접했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비슷했다. 약간 심심한 듯하지만, 모든 악기 소리가 너무나 밸런스 좋게 들린다. 힘도 좋아서인지 4312A의 큰 우퍼가 저음을 벙벙거림 없이 정교한 소리로 전달해 주는 것도 참 맘에 든다.

 

락/메탈 편향이긴 하지만, 잡청 취향인지라 매일 이런저런 음반들 꺼내 듣고, 스트리밍으로도 들어보는 중이다. 메탈을 들어도, 클래식을 들어도, 무엇을 들어도 무난하게 편하고 좋다. 영화를 볼 때에는 확실히 홈씨어터랑은 성향이 다르다. 홈씨어터가 저음을 우퍼를 통해 에너지를 전달하는 성향이라면, 지금 환경은 그 낮음 소리가 섬세하게 들리는 게 색다르고 재미있다. 음성 전달력도 좋아서 TV 볼 때에도 기본으로 켜게 된다.

 

더 비싸고 좋은 앰프도 많겠지만, 난 딱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덕분에 요즘 전보다 음악을 훨씬 많이 듣게 된다. 밤중에도 적당히 큰 볼륨임에도 주변에 시끄럽게 들리지 않는 소리, 뽀리도 편하게 옆에서 졸게 하는 소리. 이게 내가 원했던 것이다. 

생활 속에 틀어놔도 부담 없이 들리는 시스템. 아주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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