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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구치 센리 x 스토 미츠루 x 아다치 쿠미: 거장들이 노는 법 - 쿠센만엔(久千満宴) 공연 @ Azul Terrace, 오사카

미친도사 2026. 4. 14. 21:25

유튜브에 어린아이가 꽤 난이도 높은 연주를 선보이며 세상의 주목을 끄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중에 프로 뮤지션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드럼 분야에선 카와구치 센리(川口 千里)가 단연 압도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그녀는 여중생 시절, 밝은 모습으로 애니메이션 'K-ON'의 여러 음악들을 신나게 하는 모습으로 꽤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가 내가 그녀의 연주에 훅~ 빠진 것은 <Onyx>란 곡에서였다. 세련된 퓨전재즈인데, 락필이 물씬 나는 것이 내 맘을 사로잡았다.

그녀가 17살 시절에 외국의 프로 뮤지션들과 함께 한 <Onyx> 라이브 영상

 

그 뒤로도 계속 그녀의 음악을 찾아 들어보는데, 재즈를 기반으로 하면서도의 락적인 감각이 예사롭지 않았다. 15살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솔로 앨범을 냈고, 개인 활동 뿐만 아니라 여러 아티스트와의 협연은 물론,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듀오, 트리오, 재즈 밴드 등 다양한 형태의 음악 세계를 넓혀왔다. 29살(이미 프로 15년차!)인 현재까지도 앨범도 꾸준히 발매하는 성실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공연을 꼭 보리라 마음 먹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몇 차례 내한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아쉬워 하기도 했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기회가 생겼다. 재작년에 야마하 주관의 서울 드럼 페스티벌에 초청된 그녀를 계기로, 당시 음악 감독이었던 재일교포 음악인 양방언 씨가 센리짱과 함께하는 공연을 기획한 것이다. 덕분에 서울 노들섬 라이브홀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놀라운 연주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또한, 작년에는 한일수교 6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대표 여성 드러머 은아경과의 함께한 특별 공연도 관람할 수 있었다. 실제로 보면 연주도 연주지만, 수많은 무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여유와 능숙한 진행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작년 공연 후에는 그녀의 솔로 앨범 하나에 사인도 받을 수 있었다. CD 부클릿을 내밀었을 때, 그녀가 일본인 특유의 "에에~?"하고 놀라는 모습이 팬으로서 흐뭇한 순간이었다. 이러고 나니, 언젠가는 유튜브에서나 보던 일본의 클럽 공연에 대한 희망 역시 갖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4월에 밴드메이드 공연을 위해 요코하마를 가는 일정을 하나 만들었다. 그러고는 다른 공연 일정을 검색하다 보니, 카와구치 센리가 다른 두 아티스트와 함께 트리오로 투어 중이라는 소식을 그녀의 홈페이지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일정 중 하나가 밴드메이드 요코하마 공연 하루 전날에 오사카에서 있다는 것이다!


함께 하는 두 아티스트가 누군가 찾아 봤다. 기타리스트 아다치 쿠미(安達久美), 베이시스트 스토 미스루(須藤 満)라고 하고 센리 채널에 라이브 영상이 하나 있었다.

우와. 이거 대박이다. 완전 여유 철철 넘치는 블루스+재즈+락이 다 짬뽕된 멋진 연주에 보고 싶다는 마음이 확~ 들게 하네. 기타리스트는 확실히 낯선데, 베이시스트가 많이 낯익다. 찾아보니, 무려 일본 퓨전 재즈 밴드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T-Square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베이시스트였다. 트리오 이름이 '쿠센만엔(久千満宴)'이라 되어 있는데, 3인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9천만엔'이라는 소리가 나게 만든 거라 한다. 팀 이름만으로도 유쾌하기 그지 없다!

 

크게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바로 도쿄로 들어가는 일정을 취소하고 오사카로 들어가서 그 공연을 보고 다음날 요코하마로 넘어가 밴드메이드 공연을 보는 것으로 일정을 수정했다.

 

공연장은 오사카 우메다 역 바로 옆에 위치한 'Azul Terrace'라고 한다. 클럽 공연 예매는 일반 공연 예매랑 다르긴 했는데, 큰 무리 없이 예약할 수 있었다. 표를 미리 사는 게 아니고, 지정된 시간에 간다는 정도의 식당 예약 수준의 절차였다.

그리고, 작은 클럽이니까 공연 후에 멤버들의 사인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CD를 좀 구해야겠다. 티스퀘어는 옛~날에 산 베스트 앨범과 비교적 최근에 산 앨범에 스토 상의 사진이 있는 페이지가 있어 여기 받기로 하고, 센리짱과 아다치상의 CD는 야후 옥션을 통해 미리 대표 앨범 중고를 낙찰받아 호텔로 배송시켰다. 현장에서 중고 샵을 돌아다니는 수고는 덜었다 하겠다. 현장에서 산 CD에만 사인을 해준다 하면 사면 되지만, 마땅히 사인 받을 곳이 없는 것보단 낫잖아. ㅎ

 

공연 날이 되어 이른 비행기로 오사카에 도착했다. 비오는 오후에 동네 구경 좀 하다가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는, 숙소로 미리 배송시켜 둔 아다치 쿠미와 카와구치 센리 CD를 챙겨서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인 Azul Terrace는 오사카의 최대 상업지구인 우메다역 바로 옆에 있는 곳인데, 숙소에서 대략 15분 쯤 걷는 거리다. 오후 내내 비가 꽤 많이 왔는데,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는 날이 개면서 적당히 기분 좋은 날씨로 공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날씨가 좋아진 오사카

 

오후 6시 입장이라 20분 전쯤 도착했는데, 이미 5층 공연장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꽤 서둘렀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인기있는 공연이라 다르구나 싶었다.

시작 20분 전에 이미 줄이 꽤 길었다.

 

전체 60석 규모의 아담한 공간에서 나는 무대 왼쪽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앞쪽은 지인들끼리 온 팬들이 많아 보였고, 내가 앉은 테이블은 모두 혼자 온 관객들이었다. 내 자리 바로 뒤쪽 테라스 같은 구역에는 멤버들의 굿즈가 놓여 있었는데, 나름 어렵게 구한 아다치 쿠미의 앨범이 새 제품으로 당당히 놓여 있는 걸 보니 살짝 허탈했다. ㅎㅎ

 

식사와 음료 하나씩은 기본적으로 주문을 해야 해서, 마르게리타 피자와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 생맥주를 주문했다. 큰 기대 안 했는데, 피자와 맥주 모두 맛있어서, 공연 시작도 전에 맥주 한 잔을 더 시킬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더 맛있었던 피자와 맥주

 

음식을 먹다가 테라스 쪽에 인기척이 있어 내다보니, 헐! 멤버 중에 아다치 상과 스토 상이 저 구석 쪽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다. 욜~ 조금 있으니 센리 짱도 실내를 왔다갔다 하고. 벌써 신난다. 스토 상은 공연 시작 임박하니 작은 녹음기 하나를 무대가 바라보이는 장식장에 얹어 놓으면서 곧 공연이 시작했다.

 

공연 전 테라스에서 담배 피우며 휴식을 취하는 아티스트들

 

공연은 곡 연주 사이사이에 긴 토크가 이어지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토크는 주로 베이스의 스토 상이 진행을 이끌고 드럼의 센리 짱이 거드는 식이었는데, 일본어를 완벽히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현장의 유쾌한 분위기만큼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연주는 그야말로 블루스, 재즈, 락이 타이트하게 엮여 있으면서도, 그 사이에 철철 넘치는 고수들의 여유가 정말 일품이었다.

 

유쾌함 그 자체!!!

 

2부 첫 곡이었나, 센리 짱의 대표곡 <Onyx>가 흘러나왔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쿠센만엔' 버전의 라이브 영상을 예습하고 갔음에도, 현장에서 느껴지는 그 압도적인 타이트함은 기가 막힐 정도였다. 감탄을 자아내는 그녀의 드러밍을 보며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내 자리에서 센리 짱의 모습이 심벌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점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멤버들이 좌우로 스텝을 밟으며 연주하는 귀여운 퍼포먼스도 인상적이었다. 백미는 거의 마지막 곡에서 터졌는데, 스토 상이 솔로 연주 도중 무대를 벗어나 관객들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자리를 다 지나치고 내 자리 근처에서 한참 연주하더니, 급기야는 야외 테라스로 나가 의자 위로 올라가 신나게 베이스를 튕겨댔다. 정말 유쾌하기 그지없는 아저씨다.

 

공연장 안팎으로 돌아다니며 신나게 연주하는 스토 상

 

앙코르 곡은 아다치 쿠미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Winners!>였다. 하~ 정말 유튜브 영상에서 본 그 즐거움이 고스란이 재연되는 게 너무 좋았다. 중간 멘트 중에 레코딩 어쩌고 얘기가 있었는데, 매니저 분의 SNS 계정에 오사카 공연 후기를 보니 곧 쿠센만엔 이름으로 앨범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였나 보다.

 

앙코르 포함 열 곡 남짓한 셋리스트였지만, 인터미션 포함 2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은 너무나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멤버들이 모두 테라스의 매대 앞으로 모여서, 굿즈도 팔면서 관객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있었다. 사인 받을 시간이 없을까봐 은근 긴장했었는데, 너무나 자연스러운 만남의 시간이 있어 매우 안도했다.

 

공연 끝나고 각 방향으로 사진 찍으라고 포즈를 취해줬다. 😉

 

나 찾아 봐~라 (출처: 매니저 Akio Suda 상의 페북 계정)

 

나도 준비해 간 티스퀘어 앨범 속지를 내밀었더니, 스토 상이 자신의 옛모습을 보고 깔깔 웃더니 기분 좋게 사인을 해주셨다. 센리 짱에게는 그녀의 데뷰 앨범 부클릿을 내밀면서 "오늘 아침에 한국에서 왔다"라고 말을 건넸더니, 놀라면서 우리 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줬다. 그 말을 들은 스토 상도 함께 놀라며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 주셨다. 하하. 아다치 상도 친절하게 사인해 주시면서, 고맙다며 먼저 악수까지 청했다.

 

공연 끝나고 굿즈도 팔고,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
공연 후에 준비해간 CD 부클릿에 받은 사인들. 검정 펜도 준비해 갔는데, 긴장해서 못 꺼냈다. 🤣

 

나중에 매니저 분의 SNS를 보니, 오사카 공연장에서 쓰던 드럼셋이 센리 짱의 스승님이 쓰시던 셋이었다고 한다. 야마하 드럼이라 뭔가 센리가 익숙한 드럼이라 그런 건가 했더니,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뭔가 더 멋진 공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 전에 무대 앞에 가서 찍은 사진. 저 드럼이 그 드럼이다!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전체 여정을 조정하면서까지 오사카로 간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런 라이브 식당 스타일의 클럽에서 즐긴 퓨전 스타일의 음악은 너무나 신선하고 멋진 첫 경험이었다. 특히나 아다치 쿠미라는 너무나 멋진 기타리스트를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세 거장이 아담한 공간에서 관객들과 만들어낸 유쾌하고 치밀한 연주들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다음에 이런 기회를 또 노려보게 될 것 같은 이래저래 너무나 즐거운 봄날의 오사카의 밤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내심 우메다 일대의 이자카야를 찾아다니며 뒷풀이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점심부터 저녁까지 평소보다 과하게 먹기도 했고, 낮에 비를 뚫고 다닌 탓에 도저히 무언가를 더 하기에는 체력이 부쳤다. 아쉬운 대로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와 가벼운 안줏거리를 사서 호텔 방에서 조졸한 뒷풀이를 하며 일본에서의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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