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日常 Daily Life/기타 일상 이야기

슬픈 주말

미친도사 2008. 9. 9. 10:44
음냐.. 금요일에 동네 모임 번개 소식을 듣고 열심히 분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고3때 친구 중 하나한테서 전화왔습니다.
'oo가 죽었대...'

고3때 우리반에서 공부 좀 덜 하고 노는 친구들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엔 말 몇마디 안 해본 친구였죠.

졸업 후, 대학도 거의 다 졸업할 무렵부터 고3 친구들이 다시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고3때 반장이 지방에 있어서, 키가 좀 작았던 친구들과 연락이 많이 되는 저와, 키큰 친구들이 연락이 많이 되는 친구 이렇게 둘이 주동이 되어 모임을 꾸려나갔죠.

이래저래 이젠 한 스무명 정도 모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이면 의례 하는 주제가 '걔는 뭐하냐?"

그 중에 oo도 있었죠. 동거하던 여자와 결혼해서 산다더라. 90년대 중반에 시력을 잃었다더라.
맹인 안마 한다더라...

그러다가, 재작년 겨울에 반창회에 이 친구가 분당에서 논현동까지 혼자서 찾아온 겁니다.
우리가 너무 보고 싶어서... 볼 수는 없었겠지만, 옛친구들과 얘기하고 술마시고 싶어서.

시력은 잃었지만, 고3때 그 환한 모습 그대로였고, 거친 말투도 그대로였습니다.
앞을 못 봐서 불편한 친구를 위해 다른 친구들은 안주 먹여주고, 술 따라 주고... 화장실에 가는 것도 도와주고... 몇몇 친구들은 꾸준히 그 친구를 도와줬다더군요.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동백 사는 친구가 대리 운전을 시켜서, 저와 맹인 친구와 셋이서 한참을 얘기하면서 집에 왔습니다. 그 친구는 어렴풋이 제가 기억이 나는 모양입니다. 미금역에서 안마를 하니, 한번 볼 수 있겠지 하면서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금요일 저녁에 빈소 앞에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외로움에 술을 많이 마셨고, 술병이 나서 병원을 오가다가 퇴원하려고 병원 앞에 잠시 서있다가 기력이 쇠해서 바닥에 쓰러졌고... 머리를 세게 바닥에 부딪혔나 봅니다. 피도 안 나고 해서 몰랐다가 다음날 아침 119에 실려 병원에 갔으나, 뇌출혈이 심해져 그만...

중1짜리 아들과 10개월된 딸, 아내가 맹인 안마사의 수입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으니, 무슨 여유가 있었겠습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한 운구차 비용이 어려워 병원 앰뷸런스에 관을 싣고 성남화장터로 갔습니다. 친구들이 돈 조금씩 모아서 운구차라도 해주자 했지만, 가족이 거절했습니다.

화장하러 들어가는 그 친구의 관은 그냥 나무상자라 할 만한 그런 관이었습니다. 관을 들고 가면서, 나중에 납골당의 작은 공간에 들어간 친구를 보면서 한없이 슬프고 미안할 뿐이었습니다.

가족이 적어서 함께한 가족은 얼마 안 되었습니다만, 친구 열댓명이 마지막을 함께 했습니다.

휴... 11월 말에 늦둥이 돌잔치때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상욱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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