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文化 Culture/공연 중독

[공연후기] 톱밴드의 '게이트 플라워즈'가 돌아왔다! 2023.07.02 @ 벨로주 홍대

미친도사 2023. 7. 16. 14:41

 

2011년에 KBS에서 방영한 '톱밴드(Top Band)'란 밴드 서바이벌 방송은 락음악을 좋아하던 내게 꽤 큰 의미가 있었던 방송이었다. 락음악을 막 듣기 시작하던 87년 즈음부터 한동안은 국내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서 부활, 백두산, 시나위, H2O 등의 락 밴드를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90년대부터는 락 밴드 음악을 방송에서 보기는 참 힘들어졌다.

EBS 스페이스 공감을 통해 국내 락밴드 음악의 퀄리티가 엄청 좋아졌음을 조금이나마 접하고 있던 차에 톱밴드에 나온 밴드 몇 팀은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당시 정말 응원하며 봤던 팀이 '게이트 플라워즈 (Gate Flowers)'와 '브로큰 발렌타인 (Broken Valentine)'이다.
2012년에 처음으로 부산까지 락페를 가게 만든 것도 이 두 팀의 영향이 컸고 이후 국내 락페, 홍대 클럽 공연을 조금씩 찾아다니게 된 계기가 된 방송이다.
 
'게이트 플라워즈 (이하 게플)'는 2012년 부산 락페에서 처음 봤을 때, 좀 늦게 도착하기도 했고 너무 더워서 제대로 보질 못 했던 것 같다. 다음을 기약해야지 했는데, 밴드가 안타깝게도 해산을 했다.
이후에 밴드의 보컬 박근홍은 ABTB를 결성해서 6년 가량 진짜 멋진 음악을 선보였다. 이 기간은 ABTB의 공연을 네 번을 봤다. 작년 초에 박근홍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결성해서 활동을 하면서 6월 달에 공식적으로 ABTB를 떠날 것을 알려서 무척 아쉬워 했었다. ABTB와의 마지막 공연은 정말 대단히 훌륭했던 공연이었다.
2022.06.28 - [문화 文化 Culture/공연 중독] - ABTB 단독 공연 - "End of an Era" - 2022.06.25. @ 클럽 벤더

 

ABTB 단독 공연 - "End of an Era" - 2022.06.25. @ 클럽 벤더

ABTB는 정말 라이브를 봐야하는 팀이다. 결성 때부터 자타 홍대 어벤저스라고 불리며 관심이 집중 되다가 앨범 낼 즈음에 당시 홍대 신에서 가장 화끈한 젊은 (어리다 해도 될 정도의) 기타리스트

crazydoc.tistory.com

 
새로운 박근홍의 프로젝트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 (Overdrive Philosophy)'로 활동을 하는 중에 반가운 소식이 또 들려왔다. 게플의 재결합 설이었다. 가끔씩 기타 염승식과 만남이 이뤄지는 듯하더니, 공식적으로 게플의 결성이 발표되어 텀블벅을 통해 앨범 작업에 대한 후원이 시작되었다. 톱밴드 당시 함께 했던 양드럼과 유베이스는 이번에 함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재결성 텀블벅 후원은 성황리에 종료되어 앨범 작업이 진행되는 중에 가끔 공연을 통해 그들의 부활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
 
6월 달에 핀란드 Rockfest를 다녀오고, 7월 중순, 말에 해외 밴드 공연을 예약해 둔 상태에서 슬슬 홍대 공연이 보고 싶어졌다. 그러던 차에 전해온 게플의 7월 초 공연 소식. 이름하여 '신문화체험'.


게이트 플라워즈란 이름이 영어로 'Gate Flowers'이지만, 이들의 이름은 실제로 "문화(文化)"에서 따온 것이다. 그들의 부활을 '신문화'로 표현을 했고, 그 새 앨범을 미리 맛보기 하는 공연이란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지!
그들의 이전 대표곡들과 신곡들을 맛보기 할 수 있는 공연이라니! 생각해보면 ABTB도 앨범 발표 전에 단독 공연을 본 적 있고, 그로 인해 내가 그들을 정말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던지라 이 공연도 기대가 크다!
 
7월 첫 주말, 오래 간만에 홍대 앞으로 나갔다. 벨로주 홍대라는 공연장은 처음인데, 바깥에 포스터도 붙어있는게 공연장 온 느낌이 난다. 요새 홍대 앞에 공연들은 포스터 안 만드는 경우도 꽤 있는데 포스터가 있으니 반갑다.

포스터 붙어있는 공연장. 반갑다!

공연장은 아주 넓지도 않지만, 아주 작지도 않고 깔끔하다. 무대가 엄청 가까운데, 제일 앞 줄에 서려다가 그래도 조금 뒤에서 전체를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약간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그래봤자 세번째 정도 된다. ㅎ

처음 들어가 본 벨로주 홍대

홍대 앞 공연들이 비교적 저렴한 편이긴 한데, 이번 게플 공연은 조금 비싼 감이 없지 않았다. 77,000원. 나중에 공연 중에 박근홍이 언급하기도 했는데, 앨범 작업에 보태겠다고 했다.


공연 시작 시간이 약 5분? 10분 정도 지났을까? 드러머 혼자 무대에 올라와서, 드럼 솔로로 시작했고, 그 후에 베이스, 기타 순서로 나와서 잼을 이어가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했다.

 

새로운 게플 멤버들!

 

이 날 공연 셋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 Intro Jam (Drum - Bass - Guitar)
 2. F.M.
 3. 해봐
 4. 물어
 5. 서울 발라드
 6. 오해
 7. Paint It Black (The Rolling Stones cover)
 8. 도시의 밤
 9. We Are One
10. 좋은 날

11. 불편한 진실
12. 후퇴
13. 신곡1 (All In)
14. Live in a Lie
15. 신곡2 (가제 10:00 AM)
16. 기억의 틈
17. Ghost

-- Encore -- 
18. 악어떼
19. 신곡3
20.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동물원 cover)
21. 예비역
22. F.M. (Short ver.)

톱밴드의 첫 등장에서 심사 위원과 시청자들을 반하게 했던 F.M.으로 시작하면서 바로 공연장은 달아올랐고, 정규 1집 노래들이 몇 곡 이어졌다. '물어'에서 다같이 '쉭 물어 쉭 물어 쉭 물어 쉭 물어 왕왕왕'은 진짜 재밌었다. ㅋㅋ

 

톱밴드에서 상당히 주목 받고, 한국 대중 음악상을 수상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언더그라운드에서 고전하는 밴드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이고 결국엔 해체하게 되어 팬들에게 멀어졌다. 이후 박근홍은 박근홍대로, 염승식은 염승식대로 열심히 버텨왔고, 다시 '게이트플라워즈'란 이름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8년 가까이를 아쉬워했던 팬들은 다시 돌아온 그들이 너무나 반가웠는지 처음부터 대단히 뜨거운 반응이었다.

 

왼손잡이 염승식은 왼손잡이 기타가 아닌 지미 헨드릭스처럼 오른손잡이 기타를 거꾸로 메고 연주했는데, 연주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인데 진짜 락 필, 블루스 필 충만하면서도 쫄깃한 것이 기가 막혔다. 중간에 관객들 앞에서 연주하는 게 기분이 좋았는지 기타 솔로 중간에 '너무 좋다~ 진짜' 이런 멘트를 하기도 했다. ㅎㅎ

 

박근홍과 염승식이 게이트 플라워즈로 돌아와서 무대에 함께 있다니!!!

 

톱밴드에서 불렀던 Paint It Black 포함 데뷰 EP 곡들, 정규 1집 곡들까지 거의 쉼없이 1시간 반 가까이를 연주했다. 

'후퇴'라는 곡의 가사는 이런 문구가 있다.

 

절망의 끝에서 다시 절망으로

 

이 노래를 부르고 나서 박근홍이 1번의 실수로 만들어진 절망이 끝내 절망이라 생각했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8년 전에 실수(밴드의 해체)를 했지만, 절망 끝에 절망은 아니더라면서 그 증거가 자기 눈앞에 있어 감사한단다. 아~ 박수 짝짝짝

 

신문화 체험에서 예상했듯이 신곡도 세 곡이나 소개되었다. 좀 대중적인 느낌이었지만 라이브에서 관객들과 함께 하기 좋은 곡들이어서 박근홍이 여러분이 곡을 살려주신다며 관객들 반응을 치켜 세웠고, 염승식은 이 외에도 여러분이 좋아하는 변태같은 곡도 많이 있다고 힌트를 주기도 했다. 새 노래 중에 가제가 'All In'이란 곡이 있는데, 게플에 올인하겠다는 박근홍의 말에 환호성!!!

 

 

앙코르 순서에서는 염승식이 듣고 싶은 노래 신청곡 받는다면서 관객들과 대화하면서 많이 기쁜 모습을 보였다. 이 사람이 크게 웃는 표정이 아니어서 가끔 유튜브 영상 보면 기타가 화난 표정으로 연주한다는 댓글이 종종 보였는데, 원래 표정이 풍부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왜 게플 음악을 좋아하냐고 반문하고 이런 저런 얘기하는 게 관객들 반응에 무척 놀라워하고 즐거워하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앙코르에선 그 유명한 블랙사바스의 데뷰 앨범에 있는 밴드 타이틀 곡 Black Sabbath의 멋진 기타 오프닝으로 시작한 엽기적인 편곡 '악어떼'를 관객들과 다함께 불렀고, 신곡 하나, 그리고 톱밴드에서 내가 게플에 푹 빠지게 했던 그 미친 편곡!!! 동물원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연주했다. 원래 동물원을 참 좋아하기도 했지만, 게플의 경연 편곡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곡이 끝나고 박근홍이 설명하기를 라이브에서 요청이 많지만, 너무 어려운 곡이라 잘 안 하게 된다 했다. 이 말인 즉슨 공연에서 더 이상 듣기 힘들 수도 있단 의미도 있어 보여 이번 공연에서 이 노래/연주를 들을 수 있었서 너무 좋았다. 

관객들도 엄청 기다렸는지 목터져라 같이 불렀다.

 

마지막은 그들의 대표곡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예비역'. 1절은 거의 관객들이 다 부른 것 같다.

 

난 돌아가지 않아 / 뒤돌아 보지 않아 / 타는 심장도 따가운 시선도 / 흐르는 눈물도 / 이제 아무 소용 없어

 

 

 

하, 정말 가슴 벅차다. 박근홍이 가사를 참 잘 쓴다. 노래들이 라이브에서 다시 들어보면 가사들이 참 좋다. 다 함께 한 '예비역'이 끝나고 F.M.의 하일라이트 부분으로 공연을 마무리하는데,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역시나 F.M.은 살짝 사람을 돌게 하는 곡 맞는 것 같다.

 

2시간 살짝 넘는 공연 시간이 순식 간에 흘렀다.

 

  • 박근홍은 2011년도의 그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노래와 그 간의 연륜으로 진행으로 공연을 재미있게 이끌어 나갔다. 개인적으로 국내에서 가장 매력적인 프론트 맨 중 하나다.
  • 염승식은 섬세하면서도 파워풀하고 쫄깃하면서도 자유로운 기타 연주가 정말 일품이었다. 예전에 홍대 신에서 염기타는 염승식이었지! 돌아온 염기타 대 환영!
  • 새로운 베이시스트 이인산은 침착하지만 그루브 가득한 베이스 연주가 리듬감 가득한 게플 곡에 정말 딱 맞는 연주로 굉장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 새로운 드러머 전상진은 예전에 톱밴드에서 함께 했던 'POE'에서 드럼을 쳤었고, 염승식의 솔로 프로젝트 '조이엄'에서도 함께 했었다는데, 이 사람 엄청 정교한데 파워 가득. 대단했다.

 

인사하는 게플

 

밴드 측의 인증샷. 나 완전 신난 표정이다. ㅎㅎ

[출처: 게이트플라워즈 Facebook 페이지]

 

염승식의 마지막 멘트는 "ㅈㄴ 좋은 앨범으로 돌아올게요!"

엄청 기대하기에 충분했던 2시간 공연이었다.

 

공연 끝나고 무대 뒤쪽으로 나타난 박근홍과 염기타에게 데뷰 EP와 1집에 사인도 받았다!

박근홍이 미리 알아봐주고 미친도사라고 적어줬다. ㅎㅎ

 

10년 쯤 전에 단독 공연으로 보고 싶었지만 미루다가 해체되어서 이제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재결성해서 다시 공연을 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새 앨범도 나올 예정이고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 하니 많은 예전 팬들이 공연장에 찾아가면 좋겠다.

 

공연 본 지 2주만에 마무리를 하게 되네. 쩝. 다음 공연은 이미 어제 (7월 15일) 본 일본의 베테랑 메탈 밴드 '앤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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