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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순도 100% 헤비 메탈! ANTHEM - Crimson & Jet Black 투어 2023.07.15 @ 웨스트브릿지 홍대

미친도사 2023. 7. 24. 19:20

8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밴드가 몇 있다. 라우드니스, 앤썸, 바우와우, 쇼야 등. 일본 음반이 국내에 정식으로 나올 수 없었던 당시에 해외 레이블로 앨범을 발매할 수 있었던 라우드니스를 제외하고는 해적판 이외에는 접할 기회가 없었다. 일본 메탈 음악은 그닥 관심이 없었기에 그냥그냥 모르고 지내다가, 앤썸의 'Immortal (2006)' 앨범이 국내에 정식 발매하면서 궁금해서 구입해서 들어본 것이 앤썸과의 첫 만남이다. 우왓. 연주와 곡이 너무 좋은 거다. 이후에 스트리밍 서비스로 앨범들을 가끔씩 들어보는 정도로 앤썸의 음악을 들어왔다.

 

그러던 차에 2019년의 'Necleus'란 베스트 앨범이 독일의 유명한 메탈 레이블인 Nuclear Blast에서 발매되면서 유튜브에서도 예전보다 더 자주 추천 음악으로 떴고, 그들의 공연을 꼭 한번은 보고 싶단 마음이 들게 했다. 2023년 초에 발매된 'Crimson & Jet Black'이란 앨범은 여전히 화끈한 곡으로 채워졌고, 스튜디오 라이브 형태로 영상이 소개된 두 곡은 그들을 꼭 봐야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들은 새 앨범 투어에 한국을 포함시켰다. 예매 시작되었을 때 별 고민없이 예매한 것을 보면 내가 꽤나 이 팀 공연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ㅎ

 

앤썸은 1981년에 결성되어 1985년에 첫 앨범을 낸 거의 40년을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 밴드이다. 현재 멤버는 다음과 같다.

  • 모리카와 유키오, 森川之雄, Yukio Morikawa: 리드 보컬 (1988–1992, 2014–present)
  • 시미즈 아키오, 清水昭男, Akio Shimizu: 기타, 배킹 보컬 (1991–1992, 2000–present)
  • 시바타 나오토, 柴田直人, Naoto Shibata: 베이스, 배킹 보컬 (1981–1992, 2000–present)
  • 타마루 이사무, 田丸勇, Isamu Tamaru: 드럼 (2012–present)

꽤나 멤버 교체가 많은 밴드이긴 한데, 베이시스트인 '시바타 나오토'의 리드 하에 꾸준히 스타일을 유지한 밴드이다.

 

제대로 장마철을 겪고 있는 7월의 중순. 공연 날도 비가 온다고 예보가 되었고 최근 비 오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기에 공연 날도 비 맞고 축축한 채로 공연장에 들어가게 될까 걱정했는데, 마침 공연 날은 비가 그닥 많이 오지는 않았다.

 

공연장인 웨스트 브릿지 홍대는 처음 가보는 곳인데, 홍대 정문 앞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공연에 앞서 근처에서 안경점을 오래(홍대 인근에서는 가장 오래된 안경점)동안 하고 있는 친구 매장에 들러서 얘기 좀 하다가 공연장으로 향했다. 친구가 내 안경 보자마자 잘 안 보이지 않냐면서 안경을 요모조모 손을 봐줬는데, 완전 눈이 편해졌다. 안 그래도 요새 다촛점 렌즈 안경이 뭔가 좀 불편한 느낌이었는데, 싹~ 해결되었다. 혹시 홍대 주변에 종종 가면서 안경 맞출 사람은 여기도 고려해 보시라. ㅎㅎ

 

 

 

시야가 선명해진 채로 걸어서 공연장인 웨스트 브릿지로 향했다. 공연장은  실용음악 학원인 듯한 건물의 지하였다. 이런 데가 있었구나. 6시 반부터 입장이라 했는데, 6시부터 표 배부하면서 6시 20분 정도에 입장이 이미 시작한 상태였다. 

 

공연장은 경사 좌석을 뒤쪽으로 밀어넣어 스탠딩 공간으로 만든 곳이었는데, 약 3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고 첫 느낌은 '깔끔하다'였다.

일본에서 원정온 듯한 팬들이 무대 좌측 제일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제일 앞줄 사수하려는 관객들은 이미 자리 잡았다.

30분 전인데 관객이 너무 없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흠.

 

무대 반대 편의 위쪽으로 콘솔이 위치하고 있네. 오호~

무대는 천막이 쳐져 있었는데, 공연을 10분 정도 남겨두고 막이 올라가면서 볼 수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앤썸의 로고 배너가 중앙에 걸려 있고, 그 아래에 더블 베이스 드럼셋이 자리 잡았다.

관객들은 공연 시간이 다가 오면서 슬슬 채워졌고, 외국 관객들도 열명 내외로 보였고, 블랙 신드롬의 보컬 박영철님, 前 다운헬의 보컬이자 '마크로스 Inc'란 팀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한 보컬 마크님, 플라잉독의 보컬/기타리스트 이교형님 등의 우리네 밴드 멤버들도 꽤 보였다. 특히 블랙신드롬의 박영철님은 거의 동시대에 활동한 인물인지라 앤썸 멤버들과 친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역시나 공연장에 등장해서 관객들이 많이 반가워 했다.

 

공연은 오후 7시 정시에 시작했다. 불이 꺼지자 블랙 사바스의 Heaven and Hell이 흘러나왔고, 관객들은 마치 공연 떼창하듯이 곡을 따라 부르면서 공연을 기다렸고, 길지 않은 시간 후에 마치 한스 지머(Hans Zimmer) 음악 느낌의 오프닝 음악과 함께 밴드가 등장하고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했다.

 

셋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곡이 발표된 연도를 나타낸다.

01 Howling Days (2023)
02 Snake Eyes (2023)
03 Wheels of Fire (2023)
04 Evil Touch (1989)
05 Hunting Time (1989)
06 Eternal Warrior (2004)
07 Overload (2002)
08 Void Ark (2023)
09 Master of Disaster (2023)
10 Machine Made Dog (1987)
11 Blood Brothers (2023)
12 Faster (2023)
13 Shout It Out! (1988)
14 Bound to Break (1987)
15 Steeler (1985)

[The 1st Encore]
16 Burn Down the Wall (2023)
17 Pain (2014)

[The 2nd Encore]
18 Venom Strike (1992)
19 Wild Anthem (1985)

 

나는 이들 음악을 줄줄 꿰고 있는 건 아니라 곡 하나하나 느낌을 쓰지는 않으려 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순도 100% 헤비메탈의 향연이었다. 이런 크지 않은 공간에서 헤비 메탈로 충만한 공연은 2012년 말에 롤링홀에서 있었던 독일 밴드 '액셉트(Accept)' 이후 처음으로 느낀 멋진 공연이었다.

 

새 앨범 투어라 신곡들이 많기도 했지만, 그 외에 연주한 이전 곡들도 정말 묵직하고 타이트한 것이 대단했다. 관객들 반응도 엄청 뜨거웠고, 중간중간 들린 주변 관객들 대화 중 하나인 '속이 시원하다~'라는 말이 너무나도 맞는 그런 공연이었다. 내가 앤썸을 잘 몰라서 그렇지, 관객들 대부분이 이전 노래들은 코러스 부분을 많이들 따라 부르는 모습에서 이들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신보 중에서는 Snake Eyes, Master of Disaster와 연주곡 Void Ark이 특히 좋았다. 이전 곡들 중에서는 Evil Touch, Shout It Out!, Venom Strike가 매우 맘에 들었고, 이들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Bound to Break와 Wild Anthem은 역시나 훌륭했다. 

  • 리더인 베이시스트 '시바타 나오토'는 65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에너지 넘치고 힘있는 베이스 연주와 백보컬, 그리고 무대 액션을 보여주었다. 
  • 리드 보컬 '모리카와 유키오'도 환갑의 나이지만, "메탈 보컬은 이런 것이다!"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보컬에 감탄하며 봤다.
  • 기타리스트 '시미즈 아키오'는 중절모를 써서 좀 젊잖은 느낌이었지만, 기타 연주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듯 정교하고, 묵직하고 와일드했다. 정말 이 밴드가 4인조에 기타가 1명인 밴드가 맞나 싶을 정도로 기타 사운드가 꽉찬 느낌이 대단했다.
  • 드러머 '타마루 이사무'는 4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밴드가 왜 여전히 빡센 헤비메탈을 할 수 있는 지 여실히 보여줬다. 파워, 속도, 정교함 속에 묘하게 느껴지는 섬세한 감칠맛나는 연주가 정말 기가 막혔다. 특히 Venom Strike에서 카우벨인가? 속도감 있는 드럼 연주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그 소리가 너무나 멋졌다.

셋리스트 정리하고, 재생 목록 만들면서 다시 느낀 것인데 정말 40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잘 보여준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에 이리도 탄탄하고 멋진 양질의 헤비메탈 곡을 만들어냈다는 게 정말 놀라울 뿐이다. 특히나 1992년 활동 중단 이전에 나온 곡들은 지금 들어도 완전 세련되고 파워풀한 것이 감탄스러웠다.

당시 우리나라도 훌륭한 밴드들이 있었지만, 참으로 열악하고 조악한 녹음으로 멋진 연주를 다 못 보여줬는데 비슷한 시기에 바로 옆나라에서는 이리도 훌륭한 음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는 거다. 세계적으로는 라우드니스가 더 유명했겠지만, 지금 들어보는 앤썸의 음악은 헤비메탈이라는 측면에서는 여타 서구의 메탈 밴드만큼이나 훌륭하다.

 

 

 

 

앵콜이 두 번 있었는데, 밴드 멤버들이 다 같이 손들고 인사해서 정말 끝나나 싶을 정도였다. 관객들은 그런 그들의 습성(?)을 잘 아는지 "앤썸! 앤썸!"을 연호하면서 밴드를 다시 불러냈다. ㅎㅎ 너무 뻔한데 굳이 두번씩이나. ㅎㅎ

 

아래는 진짜 마지막 인사. 

 

밴드와 관객 다같이 인증샷 찍는 게 요새는 거의 정해진 순서가 되어 가는 듯하다. ㅎㅎ

출처: Anthem 밴드 공식 소셜 페이지

 

아주 잘 아는 밴드는 아니었지만 40년 가까이 정통 헤비메탈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궁금해서 봤는데 완전 만족스러웠다. 내 옆 뒤쪽에 서있던 박영철님은 함께 손 높이 치켜들며 공연을 즐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공연 후에 페이스북에 그들을 '장인'이라 칭하시면서 올드 스쿨 메탈 팬으로서 라우드니스보다 더 위대한 밴드라는 커멘트를 남기셔서 굉장히 재밌게 보셨음을 알 수 있었다.

 

소셜 미디어에 내년에 보자고 하면서 위의 사진을 올렸는데, 내년에 또다른 레파토리로 꼭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공연이 끝나고 2주째인데, 거의 매일 앤썸 음악 듣는 중. ㅎㅎ

 

셋리스트로 꾸민 애플 뮤직 재생 목록

https://music.apple.com/us/playlist/setlist-anthem-2023-07-15-crimson-jet-black-tour-live/pl.u-V26pCB0evXly?l=ko 

 

Setlist: Anthem (2023.07.15) Crimson & Jet Black Tour: Live at Westbridge Hongdae, Seoul, Korea by Kwon Hee Cheong

Playlist · 19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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