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文化 Culture/공연 중독

[공연후기]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의 마지막 공연 - 2023.09.16. @ KT&G 상상마당

미친도사 2023. 9. 18. 20:13

10여년 전에 톱밴드로 이름을 널리 알린 "게이트 플라워즈 (Gate Flowers, 이하 게플)" 출신의 보컬 박근홍은 게플을 그만 두고 2010년대 중반에 홍대 락신에서 내로라 하는 멤버들과 ABTB를 결성하여 수년간 정말 멋진 음악을 해오고 있었다. ABTB의 정규 앨범 두 장은 모두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앨범을 수상하기도 하였는데, 그런 박근홍이 작년에 새로운 밴드를 결성했다. 밴드 이름은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Overdrive Philosohy, 이하 오버필)"로 블루스 기타를 엄청 잘 친다는 '리치맨'이란 블루스 기타리스트와 연주 잘한다는 연주자들과 함께 한다 했다. 데뷰 EP 녹음을 위한 모금도 했는데, 박근홍을 제외한 멤버들은 잘 모르지만, 박근홍이 모아서 함께 하는 멤버들이라면 보통은 아닐 거라 생각해서 모금에 참여해 내 이름이 들어간 앨범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오버필의 데뷰 EP

오버필의 멤버는 다음과 같다.

  • 박근홍: 보컬
  • 리치맨: 기타
  • 백진희: 베이스
  • 강성실: 드럼

 

이 앨범은 뭐랄까, 즉흥 연주 느낌이 많이 나고 많이 다듬지 않았는데도 연주 자체는 굉장히 깔끔한 그런 느낌의 앨범이었다. ABTB가 잘 짜여진 하드락적인 성향이 강하다면, 오버필은 재즈의 즉흥성이 느껴지는 블루스 성향의 밴드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박근홍이 게플의 블루스적인 느낌이 그리웠나? 싶기도 했다.

 

요새는 두 밴드 이상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으니 그런가보다 했는데, 박근홍이 ABTB의 탈퇴를 선언했고 ABTB에서의 마지막 공연이 작년 6월 말에 있었다.

2022.06.28 - [문화 文化 Culture/공연 중독] - ABTB 단독 공연 - "End of an Era" - 2022.06.25. @ 클럽 벤더

 

ABTB 단독 공연 - "End of an Era" - 2022.06.25. @ 클럽 벤더

ABTB는 정말 라이브를 봐야하는 팀이다. 결성 때부터 자타 홍대 어벤저스라고 불리며 관심이 집중 되다가 앨범 낼 즈음에 당시 홍대 신에서 가장 화끈한 젊은 (어리다 해도 될 정도의)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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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버필에 집중하려나 했다. 기회 되면 오버필 공연을 봐야겠군 싶었는데, 음반만으로는 아주 구미가 땡기는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더니 얼마 안 있어 게플의 재결성이 발표되었고, 앨범 작업을 위한 모금도 시작했다. 헛~! 톱밴드의 그 게플이 돌아오다니!!! 그럼, 오버필과 게플의 병행인 건가? 올해 봄부터 게플이 가끔 몇몇 행사에 모습을 나타내다가 7월 중순에 새앨범 몇 곡을 소개하는 단독 공연을 하여서 보러 갔었다.

2023.07.16 - [문화 文化 Culture/공연 중독] - [공연후기] 톱밴드의 '게이트 플라워즈'가 돌아왔다! 2023.07.02 @ 벨로주 홍대

 

[공연후기] 톱밴드의 '게이트 플라워즈'가 돌아왔다! 2023.07.02 @ 벨로주 홍대

2011년에 KBS에서 방영한 '톱밴드(Top Band)'란 밴드 서바이벌 방송은 락음악을 좋아하던 내게 꽤 큰 의미가 있었던 방송이었다. 락음악을 막 듣기 시작하던 87년 즈음부터 한동안은 국내 음악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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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는 공연이었는데, 이 공연에서 박근홍이 묘한 뉘앙스의 말을 했다. "이제 게플에 집중하려고요." 이게 뭔 소리지? ABTB를 그만 둔 건 맞는데, 오버필은?

 

게플의 공연 다음 주에 오버필의 정규 앨범이 발표되었는데 표지가 강렬했다.

앨범 이름이 "64 SEE ME". 뭔 말이야? 했는데, "육사시미"랜다. 그만큼 날 것의 느낌이라는 것이겠지. 그런데, 이 앨범을 내면서 바로 밴드의 해체를 알렸다. '하. 이거 공연 한번 못 보고 끝나는 건가?' 싶었는데, 마지막 공연을 단독 공연으로 하겠다 한다. 이런 음악이 라이브에서 어떤 느낌일 지가 너무 궁금했고, 이 느낌을 접해보지 못 한채로 밴드가 없어지면 아쉬울 것 같아서 예매를 했다.

 

상상마당은 홍대 앞에서 꽤나 유명한 공연장인데 처음 가본다. 공연장은 굉장히 깔끔하고 널찍하고 좋다. 한 5~600명은 족히 들어갈 정도 되어 보이는데?

30분 전쯤에 도착해서 입장했는데, 헉...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네명 밖에 없다. 이거 좀 싸~하다.

공연 시작 직전의 모습... 스무명 남짓... ㅠ

이 멋진 공간에 스무명 남짓한 관객으로 공연이 시작했다. 아~

베이시스트 백진희가 무대에 올라와 솔로 연주를 시작하면서 여차저차해서 마지막 공연을 하게 되었다면서 인사를 한다. 

백진희의 베이스 솔로로 공연 시작

우왓. 이 베이스 뭐야! 내가 무척 좋아했던 '블루머더(Blue Murder)'의 1집의 베이시스트 토니 플랭클린(Tony Franklin)을 생각나게 하는 톤이 시작부터 눈과 귀를 사로 잡는다. 연주의 유려함으로는 2008년 토토(Toto)의 내한 공연 당시 함께 했던 베이시스트 리랜드 스클라(Leland Sklar)가 생각나기도 하는 정도였다. 베이스 솔로 도중에 드러머가 올라와 연주를 더하는데, 하~ 이 드러머도 예사가 아니네...

 

야~ 이 리듬 세션 엄청나다!

그리고는 기타리스트 리치맨과 보컬 박근홍이 올라오면서 노래들이 시작했다.

이 날 공연 셋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공연 끝나고 박근홍이 관객 한 명에게 건네준 건데, 양해를 구하고 사진 한 장 찍었다.

 

꽤나 흥이 나는 처음 두 곡이었는데, 관객들이 적기도 했고 조금 얌전한 편인지 흥이 바로 오르진 않았다. 음악 자체로는 처음부터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네.

멤버들은 적은 관객에도 개의치 않고 다들 즐겁게 열심히 연주하고 노래했다.

게플처럼 방송을 타고 인기곡이 몇 곡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 바쁘게 활동하는 멤버들로 구성된 밴드라 오버필로 밴드를 계속 이어가기에는 쉽지 않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어쩌다보니, 오버필의 고별 공연을 발표한 후에 나름 화제였던 배드램, 동이혼 등의 나름 열심히 활동하던 우리네 밴드가 활동 중단을 발표했는데, 어쩌다 보니 자기네는 고별 공연이라도 하고 해체하는데 아쉽다는 얘기도 나왔었다.

구호물품 Pt.1에서 나나나~ 이런 후렴구가 있어 함께 노래하는 구간이 있었는데, 관객들의 호응이 적을 것을 예상했는지 이 부분을 비틀즈의 Hey Jude의 나나나~로 바꿔 부르게 유도했다. 나는 오버필의 나나나에 익숙해져 따라 부르던 중에 갑자기 Hey Jude의 나나나~를 하라 하니 맞추기 살짝 어려웠다. ㅋㅋ

리치맨의 기타 솔로가 잠시 있었는데, 이 사람 참 기타 소리 좋다. 단정한 모습에서 보이 듯이 연주도 참 깔끔하다. 피킹했다가 핑거링했다가 자유롭게 바꾸는데 정말 매력적이다. 이런 사람 연주 듣다보면 확실히 락은 블루스에서 출발한 게 맞는 것 같기도하다. ㅎㅎ

기타 솔로하는 동안 박근홍은 옷 갈아입고, 머리에 푸른 뭔가를 바르고 나타났다. ㅎㅎ

관객들도 조금 더 들어와서 서른 명 남짓되는 것 같다. 

 

공연 중에 영상은 잘 안 찍는데, 짤막하게 찍은 것 중 하나.

 

몇 곡 더 하더니, 이번엔 강성실의 드럼 솔로다.

강성실이란 드러머는 꽤나 젊은 친구인 것 같은데,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뭔가 전형적인 락 드럼의 느낌보다는 재즈 드럼의 느낌이 더 있는데, 그 톤이나 파워는 여느 메탈 밴드 못지 않게 강했다. 2010년 게리 무어(Gary Moore)의 내한 공연 당시 드럼이 블루스 필인데 톤이나 파워가 엄청났던 그 드러머가 살짝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솔로가 예사롭지 않다. 드럼 셋도 사진에 보이 듯이 나름의 구성을 한 것 같은데, 드럼 솔로가 마치 유튜브의 유명한 드럼 채널인 Drumeo에서 유명한 드러머들이 솔로 연주하는 것 못지 않게 개성있고 파워 있는 연주였다. 락/메탈 밴드에서 듣던 그런 솔로가 아닌 드럼 자체로 굉장히 다채로움이 느껴지는 멋진 솔로였다. 공연 끝나고 찾아보니 여기저기 함께 하는 팀이 많은 것 같은데, 계속 지켜보고 싶은 그런 드러머라 반갑고 좋았다.

 

드럼 솔로 후엔 박근홍은 티셔츠에 안경 벗고 나타났다. 

박근홍의 공연을 수년간 보면 노래만 하는 게 아닌, 무대에서 뭔가 보여주려는 노력이 많이 보인다.  톱밴드 당시에도 개성있는 목소리였지만, 최근의 그는 전성기라 하기에 충분하고 정말 국내 락밴드 중에 손꼽을 수 있는 프론트맨이라는 생각한다. 나에게는 일종의 재밌는 공연의 보증 수표라 할까? 

 

미니 앨범 하나와 정규 앨범 하나 있는 밴드이기에 단독 공연을 다 채우려면 커버곡이 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존 메이어 노래를 즉흥적으로 부르기도 하고, 레드 제플린의 Babe, I'm Gonna Leave You을 꽤나 길게 연주해서 놀라웠다. 이 곡의 연주가 시작될 때 박근홍과 로버트 플랜트는 잘 안 엮여져서 상상하기 어려웠는데, 또, 이게 고수들의 나름의 편곡과 연주로 들으니 굉장히 멋졌다.

중간에 박근홍이 이런 거 해보고 싶었다면서 재즈 공연에서나 볼 법한 스캣 같은 걸로 즉흥 연주에 참여하기도 했다.

셋리스트의 Butter 메들리라고 된 부분에서는 브루노 마스(Bruno Mars)가 노래한 마크 론슨(Mark Ronson)의 Uptown Funk, 퀸(Queen)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 등 대중적으로도 인기있는 노래들이 줄줄이 나와서 굉장히 신나는 시간이 이어졌다. 

앙코르 시작하면서는 얼마 안 되는 관객들 모두에게 마이크를 건네면서 아무거나 하라고 해서 소리지르기도 하고, 밴드의 해체를 아쉬워하는 말을 하는 등의 시간도 있었다. 이러면서도 연주자 3인은 계속 백그라운드 연주를 깔아줬다. ㅎ

관객들이 모두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 시간

관객 중에 밴드와 친한 기타리스트(나중에 검색해 보니 '이인규'라는 블루스 기타리스트)가 있어서, 박근홍이 무대 위로 끌고 올라가서 잠시 리치맨 대신 무대에서 베이스, 드럼과 함께 즉흥 연주가 있기도 했다. 이 사람도 내공이 보통이 아닐세!

구경왔다가 졸지에 박근홍 손에 끌려올라와 잠시 연주하고 내려간 기타리스트 이인규

앙코르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연주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하 정말 이게 고수들의 음악 놀이는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다. 미스터 빅 같은 팀 보면, 그 연주하는 모습 그 자체로 대단하고 재밌는 것처럼 말이다. (아직 7월 말의 미스터 빅 후기 마무리 못함. ㅠㅠ)

리치맨 밴드 공연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멋진 공연이 단돈 44000원이고, 이 좋은 공연장에서 서른 명 남짓한 관객만 두고 하기엔 너무나 훌륭한 공연이었다. 게다가 이 조합으로 이 노래들로는 마지막이라 하니 아쉽기 그지 없네. 하~

 

공연은 거의 2시간 정도 했다. 아주 적은 관객이었지만, 멤버들은 열심히 그리고 매우 멋진 연주를 했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관객들과 다같이 인증샷도 찍고 공연이 끝났다.

 

공연장 밖에 나오니, 벽면에 이런 게 있네.

"오버드라이브필로소피의 마지막 공연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연을 보고 나니, 이 문구가 더 안타깝다.

 

무대 밖에는 멤버들이 나와 있어서, 미니 앨범과 정규 앨범에 사인 받았다.

 

박근홍은 인사하니 "형님 고맙습니다"라고 하면서 아는 체해줬고,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연주 끝내줬다고 인사하고 사인 받았다.

 

관객이 적어서 좀 여유롭기도 했고, 너무 아쉬워서 조금 기다렸다가 멤버들과 사진도 찍었다.

완전 훌륭했던 연주자들!

 

아~ 어색한 포즈

이렇게 떠나보내다니 아쉽긴 한데, 훌륭한 음악인들을 알게 되어 앞으로 그들의 모습을 다른 데서 볼 것이 기대되기도 하는 그런 멋진 공연이었다.

 

정식으로 재결성 활동 이런 건 아니더라도, 기회 될 때 좀 즉흥적으로라도 모여서 번개 라이브 같은 거라도 하면 좋겠다.

 

이번 후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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