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에 큼직한 락페스티벌이 몇 있다. 수도권에는 펜타포트, 부산에 부산락페, 그리고 전주에 JUMF가 대표적인 락페라 할 수 있다. 예전엔 보기 힘든 해외 락 밴드/아티스트가 가끔씩 락페에 와서 보는 재미가 컸는데, 수년 전부터 펜타포트, 부산 락페 모두 주관사가 바뀌면서 센 음악 좋아하는 나에겐 상당히 말랑해진 느낌이다. 지산은 아예 없어졌고...
그러다가, 비교적 최근(2016년)부터 전주에 JUMF(전주 얼티밋 뮤직 페스티벌)이란 이름의 페스티벌이 시작했다. '락페'라는 이름이 아니어서, 아이돌 그룹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행사였다. 실제로 좀 말랑한 아티스트 위주로 꾸며진 날과 락 밴드 위주로 꾸며진 날이 적절히 배치되어 다양한 취향을 아우를 수 있는 게 꽤 괜찮아 보였다. 사람들이 '전주락페'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9년에 무려 그 시절 그 밴드 스트라이퍼(Stryper)가 JUMF에 오게 되었다. 나 고등학교 때 내한공연이라는 것을 처음 한 서구 메탈 밴드였던 스트라이퍼다. 당시엔 공연을 못 봤고, 이후 한 번 더 온 것으로 아는데 못 봤다. '이건 가야 한다!' 싶어서 스트라이퍼 오는 날에 전주로 향했다. 공연장은 '전주 종합 경기장'으로 대형 무대를 두 개를 나란히 두고, 번갈아 무대를 운영하여서 많은 이동없이 공연을 즐기기 좋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날도 우리나라의 멋진 락/메탈 밴드들도 많이 나와서 무척 좋은 이미지를 갖게 했다. 아, 물론 스트라이퍼 공연은 정말 훌륭했다!
이후에도 '센 음악은 전주 락페!'라는 이미지가 생길 정도로 라인업에 락/메탈에 꽤 비중을 두는 행사가 되었다.
올해 6월 초에 우리나라 메탈 밴드 기획 공연인 와일드매치를 보러 갔는데, 안면이 있는 기획자 분이 나를 보더니 "밴드메이드 좋아하시잖아요. 밴드메이드는 아니지만 관심있어하실 밴드를 데려옵니다. 러브바이츠가 전주락페와 서울 공연을 할 겁니다"라고 귀뜸해주셨다. 헐!
러브바이츠(Lovebites)는 2016년에 결성된 일본의 5인조 여성 스피드/파워 메탈 밴드이다. 일본에는 헬로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주구장창 달리는 실력있는 스피드/파워 메탈 밴드들이 꽤 있다. 베비메탈이 전세계적으로 좀 알려지고,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여성 락/메탈 밴드들이 유튜브를 통해 주목받게 된다. 러브바이츠도 그 중 하나로, 굉장히 파워풀하고 스피디(진짜 주구장창 달린다)한 음악에 비해 하얀색의 여성스러운 느낌의 복장으로 대조적인 이미지로 꽤나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21년에 창단 멤버이자 밴드 결성을 주도했던 베이시스트가 탈퇴하면서 밴드의 활동 중단을 발표했었다.
한편, 유튜브에 자기 연주 영상을 올리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 중에 주로 슬랩 베이스 위주의 카피곡들을 올리는데 꽤나 잘 치고 신나게 연주를 해서 보는 재미가 있는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가린 Fami라는 일본의 젊은 여성 베이스 연주자가 있었다. 계속 보다보니 프로를 지향하는 고등학생이었고, 졸업 즈음해서 친구들과 음반 작업도 한다고 했던 것 같다.
조금은 갑작스럽게 해체를 발표한 러브바이츠는 약 1년의 공백 기간 후에 떠난 베이스 자리를 채우기 위한 오디션을 보겠다고 하면서 재기를 예고했다. 이 과정은 유튜브에 공개가 되었는데, 이 오디션에 위의 Fami가 등장했다. 밴드보다 유튜브 구독자 수가 6배는 더 많은 연주자라니. ㅎㅎ 당시에 Fami 구독자가 60만 정도였고, 러브바이츠는 10만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몇 명의 오디션 끝에 Fami가 밴드의 정식 멤버로 합류하게 된다. 유튜버 Fami는 밴드 합류가 결정된 후에 얼굴도 공개하고 연주 이외에 이런저런 영상도 올리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밝고 웃음이 많은 아가씨였다.
일본의 스피드 메탈 밴드 음악을 듣다 보면 특유의 스트레이트한 질주감과 다소 과장된 비장함이 느껴지는 보컬이 많은 것 같다. 난 이 느낌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일본의 스피드 메탈 음악을 그닥 선호하지 않지만, 러브바이츠가 전주락페에 온다하니 관심은 생긴다. 다른 라인업을 보고 결정하겠어!
올해 전주 락페 2차 라인업 발표 때에 요일별 아티스트도 공개되었던 것 같은데, 러브바이츠가 나오는 날이 락/메탈 위주 라인업이었다. YB, 노브레인, 크랙샷, 카디(KARDI), 소닉스톤즈, 오딘 등이 보인다. 우리나라 펑크 밴드 1세대 노브레인, 슈퍼밴드2의 우승팀인 크랙샷, 그 프로그램에서 결성된 밴드 카디, 이용원이 이끄는 펑크 밴드 소닉스톤즈, 그리고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데스메탈을 선보였던 베테랑 밴드 오딘(Oathen)이 나온다니!!!
별 고민없이 얼리버드 예매 시작하자마자 1일권을 예매했다. 공연장이 멀고, 종일하는 행사라 오고 가는 길도 고민이 아닐 수 없는데, 마침 유료 셔틀 버스를 운행한다 해서 예약했다.
전주 락페가 있던 주에는 월요일에 세풀투라 공연을 보면서 워밍업을 했다. ㅎㅎ
브라질 베테랑 메탈 밴드 Sepultura의 고별 투어 @ 예스24 원더로크홀, 서울 (2024.08.05)
공연 당일, 아침 일찍 셔틀 버스가 출발하는 강남역으로 출발~ 연일 무섭도록 뜨거운 나날이었는데, 역시나 이 날도 아침부터 예사롭지 않다. 대전에 몇 년 근무하면서 매주 왕복하던 길로 버스를 타고 다시 가니 바깥 풍경이 반갑다.
셔틀 버스는 공연장에는 12시 40분 쯤 도착했다. 이미 행사는 시작했겠지만, 바로 공연장으로 향하지 않고 밥을 먹으러 갔다. 2019년 전주락페 당시, 참가했던 밴드 노이지(Noeazy)가 페북을 통해 소개했던 주변 식당 중에 순댓국집이 관심이 있었는데 식당이 휴가여서 못 먹어봤다. 그래서, 이번엔 먹어보려고 바로 그 식당 '금암피순대'로 향했다.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적당히 매콤한 맛과 푸짐한 내용물, 그리고 반찬들 모두 아주 맛있었다. ㅎㅎ
이제 배를 채웠으니, 편의점에서 물을 하나 사서 공연장으로 향했다. 입장 팔찌를 발급받고 간단한 가방 검사 후에 입장. 벌써 네번째 팀인 매드맨스 에스프리(Madmans Esprit)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으하. 엄청 뜨겁다.
먹거리 파는 곳 슬쩍 보고 무대 쪽으로 향했다. 2019년 홍대 앞에서 이 밴드 공연 본 적 있는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른 팀이네. 콥스(corpse) 분장이라고 부르는 하얀 얼굴 분장에 피묻은 옷을 연상시키는 복장으로 꽤나 훌륭한 블랙 메탈계 음악이었다. 이 팀 무대를 본 후에는 기념품 코너에서 본인의 팀과 회사 홍보 및 기념품을 팔고 있는 밴드 '해머링'의 염명섭씨랑 인사했다. 더운데 고생이 많은데, 더위 피하는 팁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참 열심히 사는 친구다.
다음 팀은 우리 나라 인디 초기 밴드 중 하나인 '타카피'의 순서다. 굉장히 오래간만에 보는데, 역시나 관록있는 팀답게 에너지 넘치고 재치있게 공연을 이끌어 나갔다.
이 즈음에 전주에 올 계획을 세우면서 자주 들락거리는 커뮤니티 DPRIME(이전 명칭 DVDPRIME, 이하 DP)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은 회원 분을 만나서 인사했다. 내가 25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는 커뮤니티이고 공연 관련 글을 종종 올리는 지라 나를 알고 계신 분이었는데, 음악이라는 공통 주제가 있어서 맥주 한잔 같이 마시면서 즐겁게 얘기 나눴다.
무대가 좌우로 있는데 대체적으로 오른쪽이 조금 더 헤비한 밴드고, 왼쪽이 조금은 팝적인 느낌이 나는 밴드들 위주로 구성한 것 같다. 다음 팀은 궁금했던 오딘이어서 회원 분과는 다시 보기로 하고 각자 공연을 즐기기로 하고 일단 헤어졌다.
야~ 언젯적 오딘이야. 90년대 말에 한국적인 감성 물씬 나는 데뷰 앨범을 낸 블랙 데스 메탈 밴드다. 한동안 뜸했는데, 이번 락페에서 볼 수 있었다. 나도 첫 앨범만 갖고 있었던지라 곡은 잘 모르지만, 굉장히 멋진 메탈 음악이었다. 다만, 컨셉을 위해 입었을 검은 색 옷과 콥스 분장은 너무 더워 보였다. 중간에 기타리스트의 소리가 안 나서 잠시 공연이 멈추기도 했지만 무난히 공연이 끝났다. 이게 우리나라 락페들의 아쉬움이긴 한데, 많은 팀들이 라인업되다 보니, 앞쪽 팀들은 30분의 시간이 할당되는 것이 무척 아쉽다. 좀 재밌어지려면 끝나 버린다. 모든 팀이 40분 이상은 할당 되면 좋으련만. 두 번 밖에 안 가봤지만, 핀란드의 Rockfest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모든 팀이 1시간 이상의 시간을 할애 받는 것이었다.
다음 팀은 피싱걸스라는 여성 3인조 밴드다. 이름은 들어본 적 있는데, 음악과 연주는 처음 보네. 굉장히 밝은 밴드였고, 그래서인지 관객들 반응도 밝았다. 다만, 오후 3시라는 시간이 시간인만큼 미치도록 더워서 조금 보다가 행사장 가장자리에 마련된 천막 그늘 아래 물이 분무로 뿌려지는 곳에 서서 공연을 봤다. 토요일 오후에 비예보가 있길래 비옷도 챙겨왔는데, 비올 기미는 안 보이고 뜨겁기만 엄청 뜨겁다. 기온 33도의 한여름에 밖에서 공연을 보고 있는 나라니... ㅋㅋ
그 다음 팀은 '소닉스톤즈'. GUMX와 옐로몬스터즈를 이끌었던 기타/보컬 이용원이 이끄는 펑크 밴드 '소닉스톤즈'다. 이용원의 이전 팀이었던 '옐로몬스터즈'를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공연을 봤었는데, 3인조에 펑크 에너지가 대단했었다. 이후 새로운 팀 '소닉스톤즈'를 만들어서 활동해 오고 있고, 2018년 펜타포트에서도 본 적이 있다. 내가 '펑크 폭주 기관차'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락페엔 펑크가 진리!'라는 내 나름의 이미지를 공고히 해준 밴드이기도 하고 역시나 관객들 반응이 좋았다. 다만 너무 더워서 중반부터는 역시나 분무기 아래에서 열을 식히며 관람했다.
다음 팀은 관심이 많았던 밴드 카디(KARDI)다. JTBC의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밴드2에서 결성된 팀인데, 방송 후에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좋은 평을 받았지만 정착하지 못한 개성 넘치는 보컬 김예지, 고등학교 때부터 홍대 신에서 옛 하드락 감성 물씬 나는 연주로 유명했고 홍대 어벤저스라 불리는 ABTB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발매한 앨범 2장이 모두 한국 대중 음악상 최우수 록 음반상을 받기도 한 황린, 거문고로 밴드 오디션에 지원해서 주목을 받았던 박다울 등 그 방송에서 실력자들의 집합이었던 팀이다. 황린은 ABTB 공연으로 여러번 봤던지라 무대 퍼포먼스가 훌륭한 것은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또 다른 끼와 에너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보컬 김예지는 특이한 음색과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무대 장악력이 일품이었는고 솔로가 아닌 락밴드가 제자리인 것 같다. 거문고과 베이스, 드럼의 리듬 섹션도 탄탄하고 젊은 실력자들 팀답게 음악도 젊고 참 좋았다. 요새 인기있는 팀이라 그런지 관객들 반응 역시 뜨거웠다. 날씨도 계속 뜨거웠다.
이어진 순서는 크랙샷이었다. 원래 홍대 바닥에서 라이브 재미있기로 유명한 팀이었고 역시나 슈퍼밴드2로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진 팀인데, 드디어 보게 되었다. 덥기도 무지 더웠지만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물대포와 진행 요원이 허공에 대고 쏘는 물총을 맞으며 보기 위해 무대 앞으로 이동했다. 소문대로 정말 연주 잘하고 재미있었다. 멤버들은 공연 끝나고 늦도록 다른 팀 공연 관람을 하기도 했는데, 기타리스트 윌리K가 체격이 꽤나 커서 놀랐다. 다른 공연 보면서 '앗, 끝나고 사진 같이 찍자고 해야지' 하다가 놓쳐서 결국엔 못 찍었네.
그 다음은 화제의 밴드 QWER이었다. 사실 크랙샷이 공연하는 중에도, 옆쪽 무대에서 꼼짝않고 QWER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결성 에피소드를 조금 봤었는데, 막상 결성한 후에 음악은 안 들어봤다. 그닥 관심이 안 가는데, 꽤나 인기 있어서 궁금하긴 했다. 공연이 시작하고 조금 봤는데, 음악, 연주 모두 너무 내 취향 밖이다. 계속 보기엔 너무 괴로워서 탈출해서 더위 조금 식히다가 다음 팀 무대 쪽으로 조금 일찍 이동했다.
다음 팀은 믿고 보는 우리나라 대표 펑크 밴드 노브레인!!! 오래 활동한 밴드이긴 하지만, 내가 공연을 본 것은 전에 판교 거리 락페스티벌, EBS 스페이스 공감에 이어 세 번째인 것 같다. 미쳐 날뛰던 멤버들이 이제 40대 후반이 되어간다. 그리고, 올해 유튜브 등을 통해 본 보컬 이성우의 목소리가 잘 안 나오는 것 같아 조금 서글펐는데, 괜한 우려였음을 알기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성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쇳소리를 내고,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까지 더해져서 시작부터 너무 재밌다. '그래, 이게 노브레인이고 이게 락페지!!!'
재미있긴 했는데 뭔가 아쉬움이 살짝 느껴지려는 때에 드러머 황현성이 '소주 한 잔'을 노래했다. 농사일 하다 온 사람 같은복장으로 능청스럽게 노래하다가 관객 구역까지 넘어가서는 관객 한 명의 무등을 타고 태평스럽게 돌며 노래하면서 분위기가 한층 더 뜨거워졌다.
오랜 팬이 불러달라고 한 예전 곡도 하고, 그들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넌 내게 반했어' '미친 듯 놀자' 나오면서 더워도 미친 듯이 뛰고 소리 지르고 따라 부르게 만들었다. 내 근처에 아마도 러브바이츠를 보기 위해 일찌감치 앞쪽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 관객은 처음에는 무표정으로 쳐다보다가 함께 즐기는 모습에 역시 노브레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더워서 죽을 것 같은데, 목쉬도록 소리 지르며 놀 수 밖에 없게 한다. 진짜 신난다! 물대포와 물총 없었으면 못 버텼을지도 몰라. 하여간 '노브레인은 절대 실망시키지 않아!'을 다시 확인했다.
노브레인의 신나는 무대 다음은 기타리스트 적재의 밴드의 순서였다. 하지만, 이 팀은 내 관심 밖이어서 다음 공연을 위해 무대의 왼쪽의 앞쪽으로 이동했다.
적재 공연을 뒤로 하고 어슬렁거리는데, 이벤트 존에 있던 피로회복제 부스에서 돌아다니면서 나눠준다.
딱 봐도 나이가 좀 들어보였나? 어쨌든 너무나 피곤하던 차에 한 알 먹었더니 정신이 번쩍 나는 느낌? ㅋㅋ
노브레인의 무대를 정리하고 다음 팀 디아블로의 무대를 세팅하고 있다. 무대를 정면으로 바라 볼 때 왼쪽 앞에 여유가 있어 보여서, 이 자리에서 계속 버틸 예정. 제일 앞에 서있는 사람들 바로 뒤에 서있었는데, 내 앞에 있는 이가 자리를 비우면서 제일 앞줄 확보! 아~싸!
소리만 듣고 있는데 적재 밴드도 반응이 꽤 좋고, 여성 관객들의 떼창이 상당히 많이 들렸다.
디아블로는 우리나라 스래쉬 메탈의 큰 형 격인 밴드이다. 이들 공연은 세 번 정도 본 것 같은데, 뭔가 스타일리시하다. 특히나 보컬 장학이 잘 생기기도 했고, 체격이 엄청 크고 수염 기른 기타리스트 김수한의 이미지도 그렇고, 밴드 전체가 보면 일단 멋지다! 그런데, 늘 공연을 보면 사운드 레벨이 너무 높아서 실내 공연장에서는 귀가 불편했던 기억이 많았다.
해가 살짝 지는 시간이어서 무대 반대편 하늘이 멋지다.
그러면서 더위도 조금 수그러 드는 것 같다.
디아블로의 음악은 시작부터 강력했다. 음악 자체도 센데, 엄청난 음압으로 공연장을 강타했다. 세팅할 때엔 민소매만 입고 돌아다니던 보컬 장학은 공연 때엔 바지랑 세트로 된 캐주얼 정장 재킷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체격도 별로 안 큰 친구가 어마어마한 그로울링을 해대니 이들 잘 모르는 관객들은 좀 놀랐을 것이다. 실내에선 귀가 불편하기도 했던 디아블로였지만, 탁 트인 야외 무대에서는 한결 편한 사운드였다. 멤버들 모두 베테랑답게 여유롭게 연주하는 모습도 멋졌고, 돌출 무대를 오가면서 여심 홀릴 만한 미소 지으며 살인적인 그로울링 해대는 장학은 '저 자식 역시 물건이다' 싶었다. 아마도 디아블로 팬 많이 늘었을 것 같다. 오래 동안 들어온 팬으로서 기분 좋았던 무대였다. 디아블로가 공연하는 동안에, 아까 만났던 DP 회원 분이 다른 DP 회원 분을 만나셔서 맥주 한잔에 얘기 중이라고 전화가 왔는데, 공연 보는 중이라 함께 하지 못했다. 아~ 넘 아쉽네.
화끈했던 메탈 디아블로가 끝나자마자, 옆에서는 일렉트로니카 밴드 이디오테입의 순서가 시작했다. 난 자리 고정하고 음악만 듣고 있는데, 와~ 연주가 끝내준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이런 음악을 라이브로 한다고? 중간에 인사 멘트 그런 것 없이 그냥 쉼없이 곡을 이어나갔다. 저쪽 무대는 거의 클럽인 듯 다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이번 락페에서 가장 큰 수확 중에 하나, 이디오테입! 듣다보니, 예전에 TV에서 하던 '더 지니어스'라는 두뇌 게임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주제곡도 나오네? 아, 이게 이 사람들 곡이구나. 진짜 압도적이었고, 다음에 기회 될 때 제대로 공연 봐야겠다.
제일 앞에 서있어서 러브바이츠 멤버들이 세팅하는 모습부터 볼 수 있었다. 밴드 측에서 동행한 스태프가 좀 많은 것 같아 보인다.
관객들도 조금 매니악해지는 느낌이었는데, 지금까지 안 보이던 러브바이츠 깃발이 등장했다.
옆에서 이디오테입의 시간이 끝나고 러브바이츠가 바로 시작했다.
사실 이번 전주 락페에 가기로 마음먹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러브바이츠였다.
앞서 말했듯이, 이들의 음악은 내 취향과는 조금 다르지만, 워낙 인기가 많아 한 번쯤은 보고 싶었다. 그 기대감이 이번 전주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러브바이츠는 시작부터 몰아치는 강렬한 연주로 무대를 장악했다. 하지만 이들의 매력은 연주 실력만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멤버들이 정말 즐거워하며 관객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쉼 없이 이어지는 살벌한 연주 속에서도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고, 손을 흔들어 주면 같이 흔들어 주며, 사진을 찍는 팬들에게는 포즈까지 취해주는 등, 그들이 무대를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느껴졌다. 연주자들끼리 웃으며 호흡을 맞추는 모습에서, 고수들이 함께 즐기며 연주하는 특유의 여유로움과 쾌감을 엿볼 수 있었다.
10여 년 쯤 전에 부산 락페에서 일본 스피드/파워 메탈 밴드를 들으며 느꼈던 단조로움과는 달리, 러브바이츠의 공연은 정말 재미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신나게 헤드뱅잉하고 소리치고 뛰면서 그들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특히 꽤 오래동안 주목해 오던 신참 베이시스트 Fami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것이 참 좋았다. 물론 다른 멤버들 역시 각기 다른 매력으로 무대를 빛냈다.
내 옆에 있던 일본에서 온 팬도 무척 즐거워 보였고, 현장의 많은 관객들이 러브바이츠의 무대에 흠뻑 빠져 들었다. 이리도 많은 팬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들의 공연은 처음 보는 사람조차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가까이에서 보기도 했고, 재미있었으니 사진도 많다. ㅎ
보컬 아사미는 고음이 쭉쭉 올라가면서도 관객들에게 호응을 유도하는 손짓을 하는 등 매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2024-08-24 업데이트] JUMF측에서 고화질의 러브바이츠 사진을 올렸다!!!
올라온 사진 중에 마지막 사진에 제일 앞줄에 있는 나도 보인다. 아래에 하얀 표시한 사람. ㅋㅋ
전주 락페 다음날 서울 공연도 대단히 분위기 좋았던 것 같다, 멤버들은 공연 끝나고 며칠 더 머물면서 관광도 하고 맛난 것도 먹으면서 재밌게 보낸 것 같다. 여전히 그들의 음악 스타일이 내 취향이라고 하기엔 주저하겠지만, 다시 공연을 보겠냐 하면 '보겠다!'라고 할 정도로 이들의 공연은 확실히 "재미가 있었다!"
이 날 연주 중에 Stand and Deliver의 일부를 영상으로 남겨보았다.
다른 무대도 남겼으면 좋으련만 더워서 도대체 다른 건 할 생각을 못 했네.
러브바이츠의 신나는 무대 후에는 우리네 밴드 멜로망스였다. 사실 이 때부터는 안 봐도 좋은데, 귀가하는 버스가 마지막 팀 끝나고 출발하는 지라 시간을 때워야 한다. 낮에 만나서 얘기 나눴던 DP 회원 분이랑 무대 뒤쪽 천막 아래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감상했다. 밴드 이름처럼 음악도 말랑말랑한데, 듣다 보니 익숙한 곡이 좀 있구나.
그 다음은 독일의 심포닉 메탈 밴드 산드리아(Xandria)인데, 예습도 좀 해봤는지만 연주 엄청 잘 하는데 내 귀에는 잘 안 들어오는 스타일이다. 꽤 오래된 밴드라 그런지 확실히 연주는 탄탄했고, 저 앞 무대 앞쪽 분위기는 좋아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밴드는 YB였다. YB는 노래 참 잘하고 나름 베테랑 밴드인데 내게 확 와닿는 음악은 별로 없다. 천막 밑에서 보던 사람들도 YB 때엔 무대에 집중해서 같이 노래하고 하는 모습에서 라이브에 확실히 강한 팀다웠다. 내가 즐겨듣는 팀은 아니지만 목청은 진짜 끝내주었다. 갈비뼈 하나에 금이 가서 숨쉬기도 힘들다면서도 갈비뼈에 손을 대고 노래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지만, 끝까지 힘있는 목소리로 이끌어가는 모습 진짜 프로다웠다. 새 앨범은 좀 더 메탈스러운 앨범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자정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유쾌한 UV가 나왔다. 첫 곡이 비에 관한 노래였는데, 실제로 비가 꽤 많이 오기 시작해 시작부터 재미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 UV 좀 보다가 너무 붐비기 전에 공연장을 벗어나서 DP 회원 분과 인사하고 헤어졌다. 버스 타고 강남역에서 내려서 택시 타고 집에 오니 새벽 4시 반 쯤 되었던 것 같다. 얼른 씻고 뻗었다. ㅎㅎ
코로나 이전, 마지막으로 본 국내 락페가 JUMF였는데, 이후 첫 국내 락페 역시 JUMF가 되었다. 역시나 내 취향의 락/메탈 성향의 라인업 덕분에 하루 꼬박 알차게 즐겼다. 더위는 어마어마했지만, 군데군데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장치가 있어 견딜 만했다. 특히 물대포와 물총 맞는 것이 더위를 식히는 데 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아쉬움이라면 하루에 참가하는 팀이 너무 많아서 30분만 할당 받는 팀은 시간이 짧았음에 아쉬웠고, 지방에서 하는 행사라 그런지 훌륭한 라인업에 비해 관객 수가 적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의 라인업에 펜타포트에서 꽉 찬 모습이었으면 진짜 장관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음악을 야외 락페에서 접할 수 있는 드문 행사여서 JUMF가 앞으로도 잘 되면 좋겠다.
'문화 文化 Culture > 공연 중독' 카테고리의 다른 글
7년 만에 새로운 보컬과 다시 돌아온 LINKIN PARK의 2024 내한 공연 (2024.09.28) @ 인스파이어 아레나 (24) | 2024.10.11 |
---|---|
[공연후기] BAND-MAID의 한여름의 번외편 공연 2024.08.30 @ Spotify O-EAST, 도쿄 (0) | 2024.09.16 |
브라질 베테랑 메탈 밴드 Sepultura의 고별 투어 @ 예스24 원더로크홀, 서울 (2024.08.05) (2) | 2024.08.13 |
밴드메이드 커버밴드 밴드에이드(BAND+AID) 공연 관람기 (2024.07.21) @Radio Gaga, 서울 (0) | 2024.07.23 |
헤비 메탈로 충만한 밤, Anthem - Live in Seoul @ 웨스트브릿지 홍대 (2024.06.22) (2) | 2024.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