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락/메탈 음악 취향은 전적으로 쌍팔년도 전후에 형성되어 90년대에 판테라(Pantera)와 너바나(Nirvana) 이후 등장한 새로운 조류의 락/메탈 음악에 대해서는 거부감에 가까운 정도의 인식이 있었다. 대단히 인기있던 콘(Korn), 슬립낫(Slipknot), 린킨파크(Linkin Park) 등의 밴드들은 이상할 정도로 귀에 들리지 않았고, 들어볼 노력조차 별로 안 했다. 특히나 메탈 순혈 주의에 가까웠고 랩음악은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당시 내 음악적 취향 때문에 메탈과 랩의 결합이라는 특이한 조합의 린킨파크의 음악은 더욱 좋아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린킨파크의 보컬리스트 '체스터 베닝턴 (Chester Bennington)'이 2017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들이 활동을 그만 두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8월 말에 우연한 기회에 각종 공연 쪽에서 일하는 친구에게서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린킨파크의 내한 공연을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얘들이 활동을 그만 둔 게 언제고, 재결성 소문조차 없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되물었을 때, "그러니까, 극비라는 거야"라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니, 알 수 없는 카운트다운이 돌고 있었다. 이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별다른 이야기도 없이 또다른 카운트다운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러다가, 좀 긴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시점인 9월 6일에 아침(미국 시간으론 9월 5일 오후)에 눈을 뜨고 유튜브에 들어가보니, 린킨파크가 실시간으로 창고 같은 소규모 공연장에서 깜짝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헐! 진짜네! 공식적으로 재결성한 거야?'라면서 라이브를 봤다.
새롭게 합류한 보컬리스트는 에밀리 암스트롱(Emily Armstrong)이라고 메이저 밴드는 아니지만, Dead Sara라는 자신의 밴드에서 15년 가까이 활동해 오고 있는 실력있는 여성 보컬이었다. 체스터 타계 당시 밴드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드러머를 대신해 밴드와 오래동안 함께 작업했던 이가 드러머로 합류했단다. 무엇보다도 이 게릴라 콘서트의 첫 곡으로 'The Emptiness Machine'이란 신곡이 소개되었는데, 이게 너무 맘에 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곡들은 제목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곡들로 모두 꽤 괜찮은 것이다. 이 게릴라 콘서트는 1시간 가량 진행되었고, 새로운 보컬은 긴장을 많이 했는지 조금은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20년 넘게 그들의 음악이 귀에 안 꽂히던 내게 그들의 음악이 들리게 하는데엔 성공했다.
그러면서 공연이 끝나면서 새 앨범 발매 일정과 함께 투어를 발표했고, 최초 6개 도시에 무려 서울이 포함되었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9월 5일에 게릴라 콘서트로 활동 재개를 선언하고는, 투어의 첫 공연이 9월 11일이다. 한국은 그로부터 3주 가량 지난 후인 9월 28일이고. 이 정도 스케일의 밴드라면 적어도 5-6개월 전에는 공지가 뜨는데, 1주일 만에 투어 시작이라니! 유튜브에 난리가 났다. 😀 최초 6개 도시에 한국이 포함된 것도 무척 놀라운 일. 최근 수년간 특급 락/메탈 밴드의 내한 공연이 무척 적었고, 있었어도 내한 공연에서의 공연장 규모는 대부분 2000명급 이하였음을 생각하면 15000명 규모의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하겠다.
28년 가까이를 관심이 없던 밴드였지만, 이들의 재기를 알리는 1시간짜리 공연은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공연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까지 했다. 마루에서 TV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는데, 옆에 함께 있던 좀 센 음악을 좋아하는 둘째 딸도 새 보컬과 함께 하는 그들의 음악이 맘에 든다면서 "공연 보고 싶기도 하네"라고 한다. 며칠 후 공식 팬클럽 선예매 이후 일반 예매가 시작하자마자, 간신히 306구역 지정석 두 자리를 확보했다. 딸은 자기 계정으로 스탠딩 B구역 하나를 확보했다 한다.
원래 딸이 예매에 실패하면 같이 보려고 두 장을 확보한 건데, 딸이 자기 자리를 확보했으니 난 혼자 가면 되는 건데 남는 표 하나가 아깝다. 그래서, 몇 없는 락음악 좋아하는 친구들 중에 상진이란 친구에게 연락을 해봤다. "혹시 이번에 린킨파크 공연 같이 안 볼래?" 관심 있다는데, 표가 거의 없는 걸 보고 포기하겠단다. "그게 아니고, 내가 두 장 샀는데 같이 안 볼래?"
같이 보기로 했다.
이 친구는 내 국민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중3, 고2 때에도 같은 반이었던 진짜 오래된 친구다. 따져보니 거의 40년이나 되었네. 헐. 대충 둘다 중3 즈음부터 락음악을 들었고, 고2 때에는 정말 음악 얘기 많이 나누던 친구였다. 이 친구가 소개해줘서 조하문도 좋아하게 되었고, 서로에게 음악 영향을 좀 주고 받았던 친구다. 이 친구는 대학교를 가서, 학교 밴드에서 베이스 치면서 거의 프로에 가까운 정도의 활동을 하다가 결혼하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공연을 여전히 많이 다니는 걸 알아서 언젠가 같이 공연 보면 재밌겠다는 얘기를 하곤 했는데, 이번이 그 공연이 되겠다.
린킨파크의 새로운 투어의 시작인 미국 LA 공연 이후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들은 이들의 부활을 알린 그 게릴라 공연에 비해 훨씬 자연스러워진 에밀리의 보컬이 인상적이었다. 댓글도 폭발하여서 에밀리와 함께 하는 린킨파크의 재기를 환영하는 쪽이 압도적인 가운데, 체스터 베닝턴 없는 린킨파크는 인정할 수 없다는 쪽도 없지 않았다.
이후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독일 함부르크까지 공연이 이어지면서 올라오는 영상을 찾아 보면서 분위기를 짐작해 본다. 몇몇 곡을 들으면서, 이 곡에서는 떼창과 함께 미친 단체 점핑이 예상되는 곡에서 '너무 얌전한데? 해외 관객의 반응이 마음에 안 들어!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밴드의 공연은 셋리스트가 거의 고정이라 판단하고 곡을 LA 공연에 맞춰 예습하고 있었는데 애플 뮤직에 재생 목록을 만들어서 곡을 익히기 위한 예습을 하는데, 역시나 원곡들은 그닥 내 취향은 아니다. 😒 그러던 중에 영국 런던 공연에서 신곡이 발표되었다. 게임 League of Legends의 2024 결승전 테마곡이라나?
짧은 곡이지만, 이 곡도 무척 맘에 든다.
현재 린킨파크의 정규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 Mike Shinoda – lead vocals, rhythm guitar, keyboards, samples, synthesizers (1996–2017, 2023–present)
- Brad Delson – lead guitar (1996–2017, 2023–present; not touring 2024–present)
- Joe Hahn – turntables, synthesizers, samples, programming (1996–2017, 2023–present)
- Dave "Phoenix" Farrell – bass (1996–1999, 2000–2017, 2023–present)
- Emily Armstrong – lead vocals (2023–present)
- Colin Brittain – drums, percussion (2023–present)
그런데, 이 중에 Brad Delson은 이번 투어에는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 같다. 그 대타로 이번 투어에 리드 기타로 함께 하는 이는 다음과 같다.
- Alex Feder – lead guitar, backing vocals (2024–present)
드디어 공연 날이 되었고, 집 근처에서 친구를 태우고 알바 끝난 딸을 태우고 공연장이 있는 인천 공항을 향해 갔다. 공연장은 인천 공항 2터미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인스파이어 리조트 안에 있다고 한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아니면 10월 초의 징검다리 연휴의 시작인 날이어서 그런지 공항을 향한 길 여기저기 정체가 있었지만 오랜 친구와 오랜만에 함께 이런 저런 얘기 나누면서 가다보니 막히는 길도 그닥 지루하지 않게 잘 간 것 같다.
공연장 근처에 가까워지면서 리조트 전경이 눈에 들어오는데, '와~ 멋진데!!' 마치 외국에 있을 법한 공연장 모습이다.
그러나, 대중 교통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라 예상대로 차는 엄청 많았고 주차장 진입에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한참 걸려 주차하고는, 공연장 입구 찾는데 한참 걸려 드디어 아레나 입장! 일단 화장실을 갔다 와서는 딸은 바로 스탠딩 구역에 줄을 서러 이동했고, 나랑 상진이는 잠깐 건물 안 구경을 했다. 여기 그냥 놀러와서 둘러봐도 재밌겠어.
편의점에서 간단하게다로 좀 사서 들어가면 좋으련만 편의점 줄이 너무 길어서 카페에서 물이랑 상진이 당 떨어지면 먹는다고 쿠키 하나 사서 바로 입장했다.
스탠딩 입장 대기하던 딸이 카톡으로 줄 서 있던 관객들이 떼창하는 영상을 보내왔다. 이미 시작 전부터 분위기 좋네~
공연장 들어가서 첫 느낌은 좋다! 중앙에 위치한 무대가 그닥 크지 않다. 우리 자리는 3층 구역이지만, 그닥 높지 않고 경사도 완만하여서 보기 편하다. 우리 자리는 린킨파크 팬클럽 구역을 통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자리 건너 띄고 인접해서 거의 중앙이라 할 만하다!
무대는 이번 투어의 다른 나라의 공연과 비슷하게 길쭉하게 돌출되어 있고, 무대 위쪽으로 육면체의 시설물이 걸려있는데, 관객을 향한 면들은 모두 스크린일 것이고, 무대 방향으로는 조명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있는 쪽으로 드럼과 조 한의 디제잉 장비들이 배치되어 있고, 반대편에 마이크 시노다의 키보드와 기타, 베이스의 자리가 세팅된 것 같다. 중간에 한번 바꾸겠지? 계속 우리는 저 사람들 등짝만 보지는 않겠지?
열심히 알바하고 온 딸은 입장하고는 공연 전까지 쉬려 한다고 했는데, 위에서 보니 스탠딩 구역의 입구 쪽에 사람들이 몰려서 빽빽한 가운데 서있다. 같은 구역이지만, 입구 반대편은 널널한 것이 보인다. 무대 앞을 지나 반대편으로 이동하면 공간 많으니 거기로 이동하라고 문자 보냈다. 옮겨 가는 게 보이더니 이내 구석에 앉아서 쉬는지 시야에서 사라졌다.
2층이라 할 수 있는 200 구역과 3층이라 할 수 있는 300 구역은 바로 이어진 공간이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이고, 400 구역은 확실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예매 사이트에서는 거의 마지막까지 400구역에 빈자리가 많았는데, 공연 시작 전에 보니 다 찬 것 같다. 이렇게 관객이 꽉 차고 큰 공연은 참 오래간만이다. (생각해 보니, 2월에 체조경기장에서 '윤하'공연을 보긴했네) 아시아 유일의 공연이다 보니 입장 전부터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내 옆자리 사람도 외국인 여성분이었다. 혼자 BGM에 따라 흥얼거리며 기다리더니, 입장하는 사람 중 한 명이 투명 플라스틱 컵에 생맥주를 들고 입장하는 걸 보더니 "엇! 맥주 어디?"하면서 묻는다. 안쪽에서 파는 것 같더라고 얘기했더니 벌떡 나가서 둘러보고 왔다. 공연장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줄이 너무 길다면서 빈 손으로 들어왔다. 이 참에 말을 붙여봤다. "한국에 사나?" "응. 난 터키 사람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볼 기회가 없다. 내 딸이 며칠 전 런던에서 린킨파크 공연을 봤다." "아, 내 딸은 저~ 아래에 있다. ㅎㅎ"
한 30분 전까지만 해도 빈자리가 많더니, 공연 시작 한 10분 쯤 전에 거의 다 찼다. 꽤나 늦은 시간에 들어온 200구역 저 앞쪽 자리의 한 외국인이 캔맥주를 양손에 들고 들어오더니 뒤를 돌아서 다들 보라는 듯이 딱 따서 마신다. 주변 사람들 다들 폭소와 함께 부러운 한탄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ㅎㅎ
공연을 기다리는 즐거운 초조함 때문인지, 수차례 여기저기서 '린킨파크'를 연호하기도 하면서 공연을 기다렸다. 딸이 서 있는 스탠딩 B구역 왼쪽 공간은 외국 팬들이 많은지 자기네들끼리 소리 지르면서 단체 사진도 찍고, 이미 즐거운 분위기다. 저 구역은 나중에 서클핏 같은 게 만들어지기도 하겠어.
사람이 많아서인지, 저 아래 있는 딸한테 카톡이 보내지질 않는다. 늘 혼자 공연 다니다가 친구랑 있으니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상진이는 음악을 좀 하던 친구라 무대 환경에 대한 것을 주로 보고 얘기를 하고, 나는 공연장 주변을 둘러보면서 얘기를 한 것 같다. 주요 관객 연령층이 내가 주로 보던 밴드들보다 10~15살 정도 차이나지 않을까 싶다.
공연은 예정된 시간보다 약 10분 지난 7시 40분 정도에 시작했다.
일단 이 날의 셋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징~징~ 효과음에 무대 중앙에 빛줄기가 내리 쏘아지면서 순식간에 공연장에 긴장감이 돈다. 멤버들이 하나둘씩 무대에 올라오면서 연주가 시작하자마나 지정석이었던 우리 구역은 저 앞에서부터 바로 일어섰다. 이래서야, 지정석이라 할 수 있겠나? 😝 물론 나는 원하던 바이긴 하다.
에너지가 예사롭지 않은 드럼으로 시작한 첫 곡, Somewhere I Belong. 공연장 전체가 순식간에 어마어마하게 뜨거워진다. 에밀리의 보컬은 영상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파워풀하고 매력적이다. 마이크의 랩에서부터 조짐이 보였는데, 메인 보컬의 영역으로 넘어가니 이건 그냥 관객들은 무시무시한 떼창이 공연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마이크가 바로 감사의 인사와 함께 다같이 최대한 크게 같이 부르자면서 시작한 Crawling과 그 다음 곡 Lying From You. 관객들 어마어마하네. 우리네 관객들은 무작정 떼창은 아닌 것 같다. 관객이 불러서 멋있는 부분과, 메인 보컬이 불러야 할 부분에 따라 음량을 적당히 잘 조절하고 중간에 추임새 같이 기가 막히게 끼어 들어서 곡을 멋지게 만들어낸다.
마이크: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 기분 괜찮냐?
에밀리: 너희들 오늘 밤 엄청 뜨겁구나!
Points of Authority, New Divide에서도 긁거나 힘으로 밀어부치는 노래가 아닌데도 호소력 있는 에밀리 목소리 좋네. 이 사람 묘하게 음색이 다양하다. 관객들의 코러스 떼창과 함께 하니 진짜 멋지다!
에밀리: 와우. You sound amazing ! (우리도 알아!)
마이크: 새 노래 응원해줘서 고맙다!
에밀리: 나 여기에 처음이야! (웰컴~!)
The Emptiness Machine. 시작부터 관객들이 다 따라부르는데, 그냥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잠시의 여백에 코러스를 만들어서 부르고 중간중간에 어이!어이!를 넣어서 분위기를 만들어 넣는 우리네 관객의 센스!!! 👍 역시 에밀리 자기에게 맞춰진 곡이라 그런지 완전 잘 어울린다. 이 곡에서는 에밀리의 긁는 목소리와 힘있게 밀어부치는 부분 역시 진짜 매력적이다. (와! 죽인다! 죽인다!)
부웅~ 부웅~하는 효과음이 종종 나왔는데, 그 때마다 위의 스크린과 여기저기의 조명의 조합으로 구현한 시각효과 역시 아주 멋졌다. 마치 스크린에 레이저 같은 걸 쏘면 그에 의해 화면이 반응하는 것 같기도 하는 연출이 종종 있었다.
한참 사운드 이펙트로 분위기를 정리하더니 이어진 몇 곡들은 미드 템포 곡들로 분위기를 살짝 차분하게 했다.
The Catalyst. 전자음이 전면에 나서는 살짝 무거운 느낌의 곡이었는데 공연장 전체를 압도한다.
Burn It Down 쿵짝쿵짝 드럼 비트에 전자음. 에밀리 차분하면서 군데군데 긁는 톤이 근사했다.
Waiting for the End 발라드라 할 정도의 차분한 곡인데, 에밀리 목소리 너무 멋지잖아! 나는 원곡 체스터의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이 곡에서의 에밀리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에밀리, 짱 먹어라!)
Castle of Glass 연주가 간결한데 마이크가 거의 메인 보컬처럼 부르는데 곡이 되게 멋지다.
다음은 드럼 반주에 조 한의 디제잉 솔로가 이어졌다. 얼마 전에 전주 락페에서 이디오테입의 공연에서도 그렇지만, 디제이아 있는 밴드의 라이브는 내가 익숙한 음악과는 상당히 다른 텐션을 주는 게 꽤 신선했다.
이어서 마이크가 짧은 키보드 솔로 연주를 하더니 이어지는 곡 When They Come for Me 에서 랩을 쏟아냈다. 거의 힙합 공연장인데? 다음 곡인 A Place for My Head도 앞부분은 마이크의 랩이 주가 되고, 중반부터는 에밀리의 분노 섞인 듯한 보컬이 일품이었다. 관객들과의 주고 받는 부분도 되게 멋있었다.
관객들의 박수 템포가 빨라지면서 시작한 곡은 Given Up. 이건 랩이 거의 빠진 완전 메탈이네 🤘 앞 곡에서부터 이어지는 분노가 느껴진다. 이 곡 맘에 든다! ㅎㅎ
에밀리가 살짝 떨리고 불안정한 듯한 음정으로 부르는 One Step Closer가 곡의 분위기를 더 고조시킨다. 중간에 'Shut up!'을 다함께 외치는 부분에서 통쾌하기까지 하다. 이거 분노 시리즈인 건가?
전자음이 한동안 이어지면서, 무대를 바꾼다. 우리 쪽으로 향해있던 드럼과 DJ 장비가 반대편으로 가고, 키보드와 기타 장비들이 우리 쪽을 향한다. 이렇게 1부, 2부를 구분하나 보다. 이제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와 마이크 시노다를 더 볼 수 있겠네.
마이크의 피아노 소리에 맞춰 제자리에 서서 에밀리가 노래를 부른다. Lost
관객들은 핸드폰으로 공연장 전체를 빛으로 물들인다. 여기에 드럼이 들어오면서 Breaking the Habit이 이어지는데, 하~ 노래 좋다! What I've Done으로 이어지는데, 연주가 간결하게 추가된 느낌과 더불어 노래도 감정적으로 조금 더 상승하는 느낌인데, 흐름이 너무 좋다.
또 한번의 짧은 효과음으로 멤버들이 악기 바꾸고 하면서 다음 곡으로 이어진다. Leave Out All the Rest이라는 차분한 곡인데, 마이크가 중간까지는 리드 보컬로 진행되고, 중간 코러스 부분부터 에밀리가 리드를 이어받는 느낌이다. 곡의 끝부분은 관객들이 마무리했다. 하~ 멋지다!
이번엔 드럼 치던 Colin이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연주를 한다. My December. 재결성 인터뷰에서 Colin이 굉장히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얘길 하더니 정말 별 거 다하네. 원곡은 신디사이저가 연주의 기본이 되는데, 어쿠스틱 버전이 무척 어울리는 곡이었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관객들이 폰으로 만들어낸 빛이 공연장 전체를 무척 예쁘게 꾸민다. 이 곡에서의 에밀리의 감정 표현이 정말 끝내준다. 이 곡 끝나고 관객들이 한참을 에밀리를 연호했다. (에밀리! 에밀리! 에밀리!)
다시 Colin이 드럼으로 돌아가서 Friendly Fire라는 곡이 이어졌는데, 여전히 미드 템포인데 적당히 팝적이고 적당히 락적인 것이 곡이 참 좋네.
마이크의 랩으로 시작하는 Numb은 곡이 그닥 세거나 화려하지 않은데도 관객들이 떼창이 예사롭지 않더니 금세 분위기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히 멋졌다. 이 분위기 정말 죽이네! (린킨파크! 린킨파크! 린킨파크!)
마이크: 가능한 최대한 큰 소리로 같이 부르자!
시작 부분의 랩부터 관객들이 떼창이 엄청나다, In the End!!! 이 곡에서 메인 멜로디는 관객들이 거의 다 불렀다. 이 곡에서 에밀리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서 관객들 사이에서 함께 노래하기도 했다.
그리고, 상징적인 전자음으로 시작하는 Faint! 공연장이 폭발할 것 같다. 이 곡 시작할 때에 에밀리가 약간의 율동을 하기도 했다. ㅎㅎ 스탠딩 석, 좌석 할 것 없이 공연장 전체가 방방 뛰고 난리났다. 그래, 이 곡에서는 이렇게 뛰어야 하는 거다, 다른 나라 관객들아!! 헤비한 리프와 에밀리의 분노 섞인 스크리밍이 완전 속이 후련하다. 지금까지 연주된 곡 중에 제일 메탈 분위기난다!
기타 노이즈가 계속되는 가운데, 멤버들이 무대를 내려갔다. 아마 앙코르 브레이크인 것 같은데, 무대에서의 노이즈가 너무 커서 관객들의 연호가 들리지 않는다. 관객들 역시 방법을 찾는 듯, 스마트폰 조명을 켜보기도 하고 하다가 박수가 먹히는 걸 알아채고는 박수를 다같이 치면서 앙코르를 요청했다.
여러 효과음들 사이에 살짝 들리는 익숙한 신디사이저 멜로디. Papercut이다! 이 때 무대 위 스크린에서는 사진이 세로로 잘라진 듯한 효과로 멤버들을 보여주었다.
햐~ 메인 노래 뒤로 랩으로 된 코러스가 기가 막히게 멋지게 들어간다.
(린킨파크! 린킨파크! 린킨파크! 린킨파크! 린킨파크! 린킨파크!)
공연날 바로 며칠 전에 공개된 'Heavy Is the Crown' 오프닝이 엄청난 관객들의 환호성과 함께 흘러나온다! LOL 결승 주제곡이라면 한참 전에 Imagine Dragons의 Warriors가 꽤나 유명했었는데, 이번엔 린킨파크다! 곡이 짧지만 엄청 임팩트가 엄청나다! 중간 부분의 에밀리의 10초가 넘는 스크림은 정말 짜릿했는데, 에밀리는 무릎 꿇고 스크림을 하다가 결국엔 무대 위에 드러누웠다.
(린킨파크! 린킨파크! 린킨파크! 린킨파크! 린킨파크! 린킨파크!)
마이크: 엄청난 밤을 함께 해줘서 감사하다. 곧 돌아오겠다. 마지막 곡이다 (우~~) 새 앨범이 11월 15일에 나올 거다.
에밀리: 너희 정말 끝내준다 (You are so amazing!)
기타 연주에 맞춰 큰 박수와 함께 시작한 마지막 곡 Bleed It Out. 처음부터 끝까지 박수 치는 박자는 그대로 유지하는 위에 마이크의 랩이 나오는 부분과 에밀리의 긁는 보컬 부분의 감정이 묘하게 교차하는 것이 끝내준다! 이 곡의 끝부분 역시 기타 노이즈가 큰 소리로 유지되는 가운데, 멤버들은 각자 관객들에게 인사하면서 공연을 마무리한다.
2시간 가까이 미치도록 뛰고 노래했음에도 아쉬운 관객들은 린킨파크!를 잇달아 외치며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한창 전성기라고 했을 2011년에 내한하고 13년 만에 다시 찾은 린킨파크의 내한공연이 끝났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락/메탈의 영웅이었지만, 그들의 음악을 대표하던 목소리를 잃은 후에 한참을 방황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밴드로서의 멤버들의 에너지는 결국 새로운 활로를 찾아냈고, 이렇게 예전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그들인 채로 돌아왔다.
많은 락 팬들이 밴드의 목소리가 바뀌는 것에 큰 저항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ty) 없는 퀸(Queen), 스티브 페리(Steve Perry) 없는 저니(Journey), UDO 없는 액셉트(Accept),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또는 디오(Dio)가 없는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등이 그런 예일 것이다.
하지만, AC/DC의 古 본 스콧(Bon Scott)을 대신한 브라이언 존슨(Brian Johnson)처럼 새로운 보컬로 밴드의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간 밴드도 분명히 있다.
밴드에서 멤버 1인의 영향이 클 수도 있지만, 엄연히 밴드 전체로 보면 보컬도 밴드의 일원이며 다른 파트처럼 바뀔 수 있다. 특히나 체스터처럼 스스로 목숨을 저버린 경우, 다른 멤버들은 밴드를 이끌어 가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방향은 저니나 액셉트처럼 비슷한 스타일의 목소리를 찾아낼 수도 가능하고, 블랙 사바스나 반 헤일런, 퀸처럼 다른 스타일의 보컬을 영입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전 작업이 꽤나 긴 시간동안 있었겠지만, 팬들에게는 좀 갑작스러웠던 린킨파크의 새로운 보컬과 함께 발표된 재기는 수 회의 라이브를 통해 충분히 훌륭하다고 평가 받을 수 있겠다. 28년 간을 관심 없어하던 내가 그들의 음악이 좋게 들리기 시작했고, 공연장까지 가게 했고 공연 역시 무척 재미있게 봤으니 나로서는 그들의 재기는 성공적이라 얘기할 것이다.
멤버들 모두 공연 내내 즐거워했고, 한국의 팬들은 엄청난 에너지로 그들의 재기와 이번 투어를 반겼다. 유튜브 영상들의 댓글로 보니 한국의 많은 팬들 역시 여전히 체스터를 그리워했지만, 현장에서 함께 에너지를 공유하면서 오래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체스터를 보내줄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랬다. '체스터는 여전히 린킨파크의 멤버이며, 에밀리는 체스터의 교체 멤버가 아닌 새롭게 합류한 멤버다.'
멤버들 이야기를 좀 하자면,
- 마이크 시노다는 대단히 훌륭한 프론트맨이었다. 랩도 찰지게 잘 했고, 연주할 때엔 연주에 집중하기도 했고, 리드 보컬의 영역도 일부 소화하고 멘트도 해가면서 공연을 잘 이끌었다. 랩이 있는 라이브 음악이 이리 멋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게 했다.
- 에밀리 암스트롱은 많은 멘트를 하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곡의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와 감정 표현은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 DJ와 각종 효과음을 맡은 '조 한'은 린킨파크 사운드의 큰 축이기도 하면서 연주가 비는 동안은 스크린에 나오는 무대 영상을 촬영하기도 하는 등 음악 외에도 시각적인 요소를 담당하기도 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한국계 2세여서인지 공연 도중에 짧게 우리 말로 전화 통화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 베이시스트 '데이브 퍼렐'은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신나게 연주했고, 기타리스트 '알렉스 페더'역시 열심히 했다.
- 드러머 '콜린 브리튼'은 드럼 뿐만 아니라 몇 곡에서 건반, 기타까지 맡아서 다재다능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공연 기념품에 별 관심없다던 딸도 공연 끝나더니 투어 티셔츠가 조금 사고 싶어졌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기념품 판매는 공연 시작 전에 끝났네. 락공연장에 꽤나 많이 다닌 딸도 지금까지 간 공연 중에 가장 많이 뛰었다면서, 주차장까지 걸어가기도 힘들어 했다. 😝
주차장에서 빠져나가는 차도 많아서 시간이 좀 많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양호하게 빠져나와서 귀가했다. 생각 같아서는 친구랑 맥주 한잔 하면서 공연 뒷풀이를 하고 싶었으나, 동네 오니까 자정이 넘어서 다음에 공연 뒷풀이는 따로 해야겠다.
집에 들어오면서도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서 편의점 들러서 맥주 하나 사서 유튜브 찾아보면서 나홀로 뒷풀이를 했다. 후기를 상세히 쓰는 이유가 공연장에서의 그 기분을 다시 복기하기 위함이기도 한데, 유튜브에 전체 영상 올리는 이들이 많아서 내가 이렇게 계속 써야 하나 싶기도 하다. 🤔
다양한 각도에서의 린킨파크의 서울 공연 영상이 있지만, 몇 개 소개해 보자면 ...
전체 영상을 꽤나 일찍 올려서 그 해외 댓글 보는 재미가 있는 영상. 이 영상의 저 반대편 구역이 내가 서 있는 쪽이다.
스탠딩 구역에서 찍은 영상인데, 가까운데 사운드도 꽤나 깔끔하게 잡힌 영상. 영상 올린이가 롤링쿼츠의 베이시스트 '아름'인 것 같다.
이번 유튜브 영상 보고 공연장 사운드 나쁘다고 불평하는 이가 있기도 한데, 그건 찍은 사람의 스마트폰 또는 장비의 문제일 것이다. 이번 공연장 사운드는 근래 본 그 어느 공연보다 좋았다고 할 만했다. 또한, 관객의 소리가 너무 컸기에 사운드 팀이 컨트롤하기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ㅎㅎ
그리고,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이런 공연장이 한국에도 있다는 것이 뿌듯할 정도로 훌륭했다. 다만, 공연 컨셉이긴 하겠는데, 무대 쪽이 어두워서 내가 본 구역에서는 사진이 좀 잘 안 나온 게 아쉬운 정도? 😒
From Zero 투어는 영상물로 만들어질 것 같기도 한데, 만든다면 한국 공연이 메인으로 나오면 좋겠다. 이 미친 듯한 에너지의 공연이 공식 미디어로 남았으면 좋겠다.
요새는 공연 끝나고 아티스트들의 소셜 미디어 포스트를 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이다.
아래는 서울 공연 다음 날에 마이크 시노다가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글이다. 아마 the loudest & hottest audience라고 한 거겠지? ㅎㅎ
한국이 처음이라는 에밀리의 감상
그리고, 미스터 한도 인스타에서 서울 공연에서의 엄청 시끄러운 관객에 대해 언급했다.
이렇게 린킨파크의 갑작스러운 재기 발표와 그에 따른 깜짝 내한 공연 후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마이크 시노다의 'See you soon'이 너무 늦지 않은 다음이기를 바래 본다.
사진 몇 장 더 올리는 것으로 이번 공연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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