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文化 Culture/공연 중독

정교한 Math Rock의 대표 밴드, 대만의 '엘레판트 짐' 내한공연 @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 2024.04.20.

미친도사 2024. 5. 2. 18:30

유튜브를 보다보면 추천 영상이 많이 뜬다. 2019년 어느 날 무심코 눌러본 추천 영상 하나가 이번 공연을 보게 된 계기다.

 

https://www.youtube.com/watch?v=saccx5dTmKU

살벌한 양손 태핑 베이스 솔로로 시작하는 Finger

 

락페스티벌 무대에서 작은 아가씨가 현란한 양손 태핑으로 치는 베이스 사운드는 마치 SF 영화의 배경 음악 혹은 이펙트 같은 분위기를 만들면서 드럼과 기타 두 멤버가 차분하게 연주를 쌓아가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내가 3인조 밴드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단연 3인조 밴드가 되기 위해서는 연주력과 그 합이 엄청 잘 맞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상은 단숨에 내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밴드 이름은 "엘레판트 짐 (Elephant Gym)"이고 대만 밴드이다. 한자로는 "大象體操", 한글로 그대로 읽으면 "대상체조 (큰 코끼리 체조?)" 대만의 남쪽 끝에 있는 지역인 카오슝 출신이랜다.

 

이 영상을 본 후에 한 번인가 내한공연 소식을 본 것 같은데, 그 때엔 볼 수가 없었고 코로나로 몇 년 훅~ 지나갔다. 그러다가 지난 주에 페이스북을 보는데, 바로 그 주말에 공연 일정에 한국이 있는 거다.

 

헉! 이걸 모르고 있었다니! 바로 검색해서 예매를 하고 밴드에 대해 조금 알아봤다.

 

기타와 베이스가 남매지간이고, 고등학교 때 학교 음악 클럽에서 만난 드러머와 밴드를 결성한 것이 2012년이랜다.

결성 이래 변함없는 멤버는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위의 사진에서의 멤버들 위치

 

Tell Chang 張凱翔 기타 (좌)

KT Chang 張凱婷 베이스 (중)

Chia-Chin Tu 涂嘉欽 드럼 (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들 음악을 'math rock'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락의 장르가 엄청 많게 나누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math rock'이란 장르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 그런데, 뭔가 듣자마자 '아하!' 이해가 되는 그런 장르네. 굉장히 정교한 연주 위에 곡을 좀 복잡하게 쓴 그런 음악일 것 같지 않아?  세계적으로 여러 밴드가 활동하고 있고, 대만의 '엘레펀트 짐'이 대표 밴드 중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 하여간 새로운 음악이 좋게 들리는 건 드문 일인데, 공연까지 보고 싶게 하는 오래간만의 멋진 밴드일 것 같다.

 

 

공연장은 작년에 일본의 메탈 밴드 '앤썸' 공연 보러 처음 가본 홍대 앞 웨스트 브릿지 라이브 홀이다. 공연 시작 30분 전쯤에 갔는데, 생각보다 관객이 많다. 그리고, 굉장히 젊다. 보통 메탈 공연을 보러 가면 조금 연령층이 높은 편인데, 이 공연은 굉장히 젊은 관객들이 주류다. 아니, 내가 제일 나이 많은 것 같다. 😒

 

하여간, 7시가 살짝 넘은 시간에 오프닝으로 우리네 밴드  "봉재인간"이 무대에 올랐다. 처음 듣는 밴드인데 역시 3인조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할 수는 없는데, 이 밴드도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온 관객들 중에 팬이 많은지 반응이 상당히 좋다. 락페스티벌 이런 데 종종 나오나 싶은데, 꽤나 흥미로운 밴드였다. '봉재인간'은 30분 정도 연주하고 들어갔다.

 

우리네 밴드 '봉재인간'이 오프닝을 했다.

 

오프닝 공연이 끝나자 다시 무대 앞에 가림막이 내려오면서 "엘레판트 짐"의 공연 포스터가 비춰진다. 오호~ 가림막 뒤로 뭔가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7시 55분 쯤에 본 공연이 시작했다.

 

오프닝 무대 후 '엘레판트 짐' 준비 중

 

무대의 왼쪽엔 기타리스트 텔, 가운데는 베이시스트 KT, 오른쪽에 드러머 Tu가 위치한다. 케이티는 무대에 올라올 때 맥주 500cc짜리를 들고 올라왔다.

'엘레판드 짐' 등장!

 

 

내가 이들 노래를 많이 아는 게 아니라서 한곡한곡 감상을 얘기하기는 어렵고, 이 날 셋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 Underwater
  2. 春雨 (Spring Rain)
  3. Quilt
  4. Go Through the Night
  5. Witches
  6. Shell
  7. Galaxy
  8. Ocean in the Night
  9. Anima
  10. 鏡子 (Mirror)
  11. 中途 (Midway)
  12. Half
  13. Frog
  14. Games
  15. Finger

 

예습한다고 미국 투어 셋리스트로 좀 들어봤었는데, 들어본 곡도 있고 새롭게 추가된 곡도 있었다. 하여간, 다들 연주가 정말 좋다. 그리고, 베이스가 곡의 흐름을 주도하는 느낌이 정말 좋은데, 연주가 진짜 끝내준다. 기타리스트 텔은 기타 말고도 몇 곡에서는 건반을 연주하기도 했다. 드러머도 정교한데 그 느낌이 정말 좋다. 우리네 밴드로 이런 감흥을 느꼈던 건 밴드 성향은 좀 달랐지만, '아시안체어샷'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네.

 

차분해 보이는데, 연주와 무대는 에너지는 예사롭지 않은 베이시스트 KT

 

세 곡을 하고 나서 첫 인사 때엔 드러머가 굉장히 유창한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엘레판트 짐입니다."로 인사를 했다. 와~~~~ 그랬더니 "미친 거 아냐? 미친 거 아냐?" 그런다. ㅋㅋ 바로 KT가 멘트를 이어간다 (영어로). "우리 드러머 Tu는 한국어를 잘 하는 척을 잘한다." ㅎㅎ 그러면서 "어제 한우를 처음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한국 음식은 너무 많이 먹게 된다. 대만엔 쇠고기 수프가 있다." 이런 얘기를 했다. 아마 우육탕을 얘기하는 것이겠지.

 

다음 곡 Go Through the Night은 기타 샘플링을 한 건데, 일본의 친한 기타리스트가 해준 거라나? 이 곡에선 텔이 건반을 연주했다. 이런 식으로 곡 설명도 적절히 해가면서,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재밌게 공연을 풀어갔다. 틈날 때마다 맥주를 마시는 KT는 보기에도 뭔가 유쾌한 성격인 것 같고, 기타/건반의 텔은 차분한 것 같다. 드러머도 밝은 사람 같다.

기타 대신 건반 + 베이스 + 드럼 조합인 곡도 꽤 있다

 

중간에 텔이 멤버 소개했는데, KT는 밴드의 소셜 미디어를 담당하고, Tu는 머천을 담당한댄다. 3인조이기도 한데, 보통 사운드 엔지니어까지 해서 넷이 공연을 다니고, 가끔 매니저까지 다섯 명이 다니는 소규모 팀이라 했다. 자기네들은 부자가 아니니 머천을 구입해 달라는 말은 잊지 않고 한다. 그런데, 이미 엘레판트짐 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이 꽤 있네.

 

복잡하고 놀라운 연주인데 그게 또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게 참 대단하다. 그 정교함에 헤비한 베이스가 더해져 헤드뱅잉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 그런 곡들이다. 실제로 KT는 헤드뱅잉 못지 않는 도리도리 액션도 많이 한다. 한 1시간 쯤 되었을까, KT가 "이제 우리 세곡 남았다"라 한다. 뭔소리야!!! "우리 봉재인간이랑 늦지 않게 뒷풀이해야 한다. 타이완 대 한국의 술대결이 있을 거고, 내가 이길 거다."란다. ㅎㅎ

 

KT의 베이스 연주와 무대 액션은 정말 일품👍

 

그러면서, 마지막 세 곡들을 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하다. 예습한다고 들어본 곡들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라이브로 들으니 그 다이나믹함이 어마어마하다.

Games란 곡은 좀 길게 동영상을 찍어봤다.

개인적으로 이 곡이 이 날 공연 최고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헤비하고 현란한 베이스가 일품이었다.

 

헤비한 음악을 좋아하는 나지만, 이 밴드 음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마지막 곡은 내가 이들을 처음 접했던 Finger였는데, 확실히 이 곡으로 유명해진 게 맞나보다. 관객들 반응이 완전 달랐다. 기대를 많이 한 것에 비해 곡이 좀 익숙해서 그런가 덜 충격적이었다. ㅋㅋ

 

이 날 공연은 공연 영상 많이 올리시는 '소마락51'님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있으니 한번들 보시라.

https://youtu.be/LecyV0HZf3g?si=4SDpLssOldsZfhKj

 

그닥 길지는 않은 70분 정도의 '엘레판트 짐'의 공연이 끝났다. 관객들 같이 사진도 찍고, 무대 앞쪽의 관객들과 인사하고 들어갔다.

 

보컬이 있는 곡이 있지만, 노래라기 보다는 악기 연주같은 느낌이 더 강해서 기본적으로는 '인스트루멘탈' 밴드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현란한 베이스에 비해, 기타는 산뜻한 느낌이 부각되고, 드러머도 미친 듯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멋지고 흥미로운 연주였다. 연주 위주의 공연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음은 뛰어난 연주와 좋은 곡 때문인 것 같다. 중간중간 멘트도 재미있게 하고, 공연을 참 재밌게 진행하는 밴드였다. 특히나 베이시스트 KT는 밴드메이드(BAND-MAID)의 '미사' 이후 가장 좋아하는 베이시스트가 될 것 같다.

노래도 악기 연주처럼 느껴지는 음악

 

 

공연 끝나고 나와서 머천 파는 데서 CD를 좀 사볼까 했더니, 준비한 CD는 모두 팔렸댄다. 헐~ 들어가기 전에 살 걸.

밖에 나오니 날이 따뜻해져서 그런가, 홍대 앞 식당들은 사람들이 많네.

 

좀 갑작스럽게 본 공연인데, 굉장히 재미있게 본 공연이었다. 당분간 엘레판트짐 음악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다음 공연은 4월 25일의 '아치 에너미 (Arch Enemy)'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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