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에 큰 딸이 벨기에 겐트(Ghent)에서 교환학생을 한다고 통보해 왔다. 그래서, 이 참에 벨기에를 가보자 싶어서 연초에 5월 초에 네덜란드/벨기에 여행하기로 결심하고는 또 그 즈음에 재미있는 공연이 있나 검색을 해봤다.
보통 유럽의 여러 락페스티벌이 6월 초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지라 공연이 잘 검색이 안 되었는데, 벨기에에서 이틀 간의 글램락/메탈 페스티벌이 예정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1주일간의 체류 중에 출국 전 날에 공연 1일차가 겹쳐서 하루는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라인업도 거의 확정되어 있었는데, 아는 밴드가 별로 없다. ㅋ
옛날부터 활동하던 '타이케토(Tyketto)'는 이름만 알고 데뷰 앨범 표지 정도 익숙하 ('티케토'라고 기억하고 있음) 팀이고, 작년에 핀란드 Rockfest에서 보고 맘에 들었던 '크래쉬다이엇(Crashdïet)'만이 눈에 익은 팀들이었다. 그래도, 딱히 선택의 여지도 없고 모르는 밴드들이 많지만 글램락을 앞세운 락페라는데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다. 날짜 맞으면 크래쉬다이엇도 다시 보고 싶기도 했고...
시간이 흘러 요일별 라인업이 발표되었는데, 내가 볼 수 있는 첫 날엔 아는 팀이 하나도 없다. 아는 팀이 이름만 아는 타이케토여서 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하루 공연 보는 티켓 값이 35유로(수수료 포함해서 37.5유로)면 거저다 싶어서 일단 예매했다.
1일차 라인업 |
2일차 라인업 |
지역을 검색해보니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고, 공연이 오후 4시부터 새벽 1시까지라 해서 하루 차를 렌트해야겠다. 사실 근처에 숙소를 잡아볼까 생각도 했는데 너무 외진 곳이라 숙소도 마땅치 않기도 했고, 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일곱 팀의 공연을 보는 거라면 렌트비(약 62유로) 포함해도 그닥 비싸게 느껴지지는 않는 수준이다.
곡을 예습 같은 걸 해보려 해도 setlist.fm에 꾸준히 셋리스트 등록도 잘 안 되는 그닥 유명하지 않은 밴드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냥 애플 뮤직이랑 유튜브로 대표 앨범 하나씩 찾아서 들어보는 정도로 예습.
공연을 얼마 안 남겨 놓고 시간표가 나왔는데, 40분 이상은 할당되네. 첫 날 공연하는 팀들의 국적은 다음과 같다.
- Mädhouse (오스트리아)
- Kim Jennett (영국)
- DeVicious (독일)
- Wildheart (벨기에)
- Catalano (오스트레일리아)
- The Cruel Intentions (노르웨이)
- Tyketto (미국)
벨기에도 낯선데 지방 도시에 규모도 가늠이 안 되는 공연이어서 페이스북 페스티벌 계정에 문의글도 여럿 남기고 하면서 정보를 알아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행사 총괄 관리자가 내 이름을 기억하는 것 같다.
공연을 얼마 안 남기고, 페스티벌 기념 티셔츠를 예약을 받는다는데, 디자인이 예쁘다! 주문이라고 무슨 페이지가 있는 건 아니었고, 그냥 페북 메신저로 관리자한테 '나 이 사이즈로 하나 찜~' 이렇게 문자 하나 보내두면 되는 거였다.
하여간, 어찌어찌 네덜란드를 거쳐 벨기에에서 며칠을 보내고 출국 전 날인 공연 날, 브뤼셀 공항에서 차를 렌트해서 공연이 있는 도시로 이동했다. 원래 경차에 수동 기어를 예약했는데, 차가 없어서 준중형 SUV를 내줘서 한결 편하게 운전했다. ㅎㅎ
거리는 한 60km 쯤 되는데, 가는 길에 경찰이 경호하면서 진행되는 자전거 경주도 만나고, 천연 비료(💩)를 쏟아내는 밭도 지나갔다. 동네는 굉장히 한적한 밭이 계속되다가 나타나는 우리로 치면 읍내 같은 마을이었다. 행사장은 동네 행사를 하는 구민회관 정도의 곳 같다.
주차장은 구민회관에 딸린 그닥 크지 않은 무료 주차장인데, 내가 들어갔을 때 마침 빈자리가 생겨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공연 시작 전에 눈 좀 붙이고 갈까 했는데, 일단 공연장을 둘러보고 다시 오던지 할 생각으로 행사장으로 향했다. 길 건너편에서 사진 찍느라 광각으로 찍어서 좀 작아 보이는데, 아주 작은 건물은 아니다.
입구에서 구매한 티켓 QR코드로 체크인을 하니 1일권 팔찌를 준다.
예전 행사 영상을 봐서 대충 규모는 짐작은 했지만 들어가니까 첫 느낌은 역시나 크지 않다! 게다가 공연 15분 쯤 전인데, 관객도 무대 앞쪽엔 별로 없다.
한쪽 벽면엔 바가 있어 맥주 등 음료를 사서 마실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무대 뒤쪽 귀퉁이에 머천 파는 매대가 있다.
예약해 둔 티셔츠를 구입했는데, 수량을 넉넉히 준비한 것이 아니라 딱 주문한 수량만큼만 제작한 것 같다. 여기서는 카드가 안 되어서 현금으로 구입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1주일 가량 다니면서 현금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는데, 혹시 몰라 현금 지갑을 챙겨가길 정말 잘 했다.
각 밴드의 CD 등 상품을 파는 옆에는 글램락 CD들을 파는 코너가 있다. 누가 중고 CD를 잔뜩 들고 나온 건지는 알 수 없는데, 사람들이 한참 들여다 보고 있고 구입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4시가 되자 진행자 둘이 나와서 행사 시작을 알리는 말을 하면서, 첫번째 밴드 매드하우스(Mädhouse)를 소개했다. 움라우트 때문에 독일 밴드인가 했는데, 오스트리아 밴드구만. 벨기에가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지라 공연 진행도 그 중 하나로 진행할 줄 알았는데, 모두 영어로 진행을 했다. 다행~ 핀란드 락페스트는 다 핀어로 해서 좀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ㅎㅎ
하여간 매드하우스 공연 시작!
5인조인데 베이시스트는 하얀 헌병(?MP) 헬멧을 쓰고, 기타리스트 한 명은 왼손잡이로 모히칸 스타일(?)로 머리를 밀어서 좀 특이해 보인다. 왼쪽에 있는 기타리스트는 그냥 좀 얌전하고, 보컬은 살짝 머틀리크루의 보컬 빈스 닐 닮아 보이기도 하다. 드러머는 내내 상체를 벗은 채로 연주했는데, 상당한 근육질이었다. 드러머가 새롭게 합류했다고 했던 것 같다.
노래는 쌍팔년에 들었을 법한 글램락 음악인데, 촌스럽지 않고 신난다.
첫 밴드 중간에 나가서 차에서 잠깐 쉬고 올까 해서 어슬렁거리다가 한 장 찍긴 했는데, 이 팀의 공연이 재밌어서 계속 봤다. ㅎㅎ
어느 곡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기타리스트 한 명이 해골 가면을 뒤집어 쓰고 연주하고, 보컬은 긴 칼을 들고 노래하다가 막판에 해골 목을 칼로 긋는 퍼포먼스가 있기도 했다.
40분만 할당받기엔 좀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던 공연이었다.
멤버들이 셋리스트 뜯어서 앞줄에 있는 관객에서 나눠주기도 해서, 얼른 가서 받은 이의 허락 받고 사진 하나 찍었다.
다음 순서를 진행하는데, 매드하우스는 밴드 멤버들이 악기랑 장비 등을 직접 챙기고 정리하는 영세한 밴드라는 생각에 좀 짠하다.
다음 순서까지는 20분 여유가 있는데, 차에 가서 티셔츠도 갈아 입고 잠깐 눈도 좀 붙이고 다음 팀 공연 보러 갔다.
공연장에 들어갔더니, 첫번째 팀인 매드하우스 멤버들이 머천 파는 곳에서 CD 사는 사람들에게 싸인도 해주면서 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람들이 좀 덜 북적일 때 보컬에게 인사하고 같이 사진 찍었다. ㅎㅎ
두 번째 팀은 영국에서온 '킴 제넷(Kim Jennett)'이란 여성 보컬이 이끄는 팀이다.
정규 앨범을 낸 가수는 아니고, 싱글로 몇 곡 내고 다른 사람들 곡에 피처링 좀 하는 등으로 활동을 하는 것 같다. 체격 작은 아가씨가 목청이 엄청 좋았다.
맥주 한 잔 사먹으려니까, 음료 쿠폰을 사야 한댄다. 15유로, 30유로짜리 음료 쿠폰을 사면 음료 가격에 맞춰서 금액을 지워준다.
생맥주는 아니고 병맥주를 플라스틱 컵에 따라서 주는데, 벨기에니까 당연히 벨기에 맥주가 있는 거지만 무려 Leffe, Duvel, Vedett 등과 같은 유명하고 맛있는 맥주들이 있다니 너무 좋다! 금액도 한 잔에 4유로에서 6유로 정도로 그닥 비싸지 않다. 어후~ 처음 마신 맥주는 '레페 브라운 (Leffe Brown)'. 흑맥주인데 쌉쌀한 맛이 아닌 엄청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세 번째 팀은 독일에서 온 '드비셔스(DeVicious)'란 밴드인데, 키보드가 있는 5인조 밴드였다.
이름만으로는 이탈리아 밴드인가 싶었는데, 독일 밴드였다.
공연을 보기로 결정한 후로 각 밴드를 페북에서 팔로우를 하면서 좀 익숙해지려 했는데, 공연 한 달 쯤 전에 보컬 상태에 대한 글이 하나 올라왔다. 최근 1-2년 동안 알 수 없는 이유로 목소리가 잘 안 나오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우연히 가수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를 만나 진단하면서 본인의 여러 문제를 알게 되어 치료 및 회복 중이라는 글이었다. 공연이 한 달 남은 시점이어서 걱정이 되긴 했는데, 지금 상태는 꽤 괜찮은 것 같다!
밴드 측에서 공연 전에 미리 셋리스트를 공개해서 함께 즐기자고 했던 터라 곡이 좀 더 익숙한 상태로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아주 세련된 음악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귀에 착~ 감기는 맛이 있는 곡들이 있어 재미있었다.
기타리스트가 7현 기타와 6현 기타를 바꿔가면서 치는데, 덩치가 얼마나 큰 지 기타가 완전 작아 보인다.
멤버들 연주가 전반적으로 탄탄하고 좋은데, 드러머 굉장히 여유로우면서도 단단한 연주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며칠 전에 안 건데, 이 드러머는 '마르쿠스 쿨만 (Markus Kullman)'이라고 스튜디오나 라이브 세션으로 주로 활동하는 인물이었다. 약력을 보니 딥퍼플 출신의 글렌 휴즈(Glenn Hughes) 밴드에서도 연주했고, 최근에는 존 디바 (John Diva)란 인물의 밴드에서 드럼을 치면서 공연하고 다니는 중이었다. 와일드페스트 공연을 맞아 드비셔스의 드러머가 공석이어서 도와주기 위해 합류했나 보다. 하여간 드럼이 짱짱하니 좋았다.
이미 셋리스트는 알고 있었지만, 공연 끝나고 받은 사람한테 양해 구하고 사진 하나 찍었다. ㅎㅎ
다들 생각이 비슷했는지, 공연 끝나고 머천 부스에 사람들이 꽤 모여서 CD를 사고 인사 나누고 하더라. 밴드가 직접 CD를 들고 와서 파는 거라 거스름돈 때문에 멤버들 개인 지갑에서 꺼내서 거슬러 주고 그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나도 인사 나누고 싶은데,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서 아쉽지만 패스.
다음 팀은 벨기에의 '와일드하드(Wildheart)'란 팀이다.
이 팀이 아니었으면 이 페스티벌은 없었을 거라면서 소개했는데, 아마도 이 페스티벌의 초기부터 함께 한 밴드인가 보다. 와일드페스트의 와일드가 이 밴드의 와일드에서 따온 걸까? 그런 건 모르겠고, 벨기에 로컬 밴드라 그런지 상당수의 관객들이 따라 부르는 등 반응이 매우 좋다. 벨기에 사람들도 키가 엄청 큰 사람이 많은데, 그래도 공간이 널널해서 적당히 잘 위치 잡으면 공연 보기에 꽤나 시야가 괜찮다. 연주도 깔끔하고 노래도 잘 하는데, 곡이 좀 재미가 없다. 약간 뒷쪽에서 좀 쉬면서 봤다.
그러다가, 공연 끝날 즈음에 무대 앞쪽으로 가서 셋리스트 사진도 하나 찍었다.
글램락 페스티벌이라 더 그렇겠지만, 관객들도 장발도 많고 락밴드 멤버들 못지 않게 차려입고 온 모습이 분위기를 더 근사하게 만드는 것 같다. 글램락이라 그럴까 멋진 (키도 엄청 큰!) 여성 관객들도 많다.
음료 쿠폰이 많이 남았지만, 다 쓰기엔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실 것 같아서 너무 늦지 않게 한잔 더 마셨다.
듀벨이나 베뎃 같은 걸 마셔볼까 했는데, 걔들은 8%가 넘는 돗수라 조금 과한 것 같아 알콜 돗수 6%대인 레페 기본 맛인 'Leffe Blonde'를 마셨다. 아후~ 너무 맛있다.
맥주 마시는 중이었나? 아까 무대에서 밴드 소개도 하고 하던 사람이 나에게 오더니 "너 케빈?" 이렇게 아는 척한다. 이번 행사 기획자인 얀(Jan De Greve)이랑 인사했다. 여차저차해서 벨기에 여행왔다가 오게 되었다고 얘기하니 와줘서 고맙다 한다.
다음 팀은 호주(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카탈라노(CATALANO)'란 밴드다.
눈에 확 띄는 빨간 모자를 쓴 보컬은 딱 봐도 호주/뉴질랜드 그 쪽의 원주민 혈통인 것 같다. 기타리스트는 V형 기타를 치는데 좀 정통 락/메탈 성향의 연주였고, 베이시스트는 뭔가 체격도 그렇고 베이스를 메고 있는 위치, 그리고 핑거링 위주의 연주, 헤드 뱅잉하는 모습 등이 메탈리카의 초기 베이시스트였던 고 클리프 버튼 느낌이 살짝 난다. 와~ 이 팀은 비쥬얼에서도 앞선 팀들에 비해 확실히 글램락스럽다.
노래도 딱 신나는 글램락 풍이어서 신나고 좋다~
개인적으로 와일드하트 때 살짝 가라앉은 분위기가 확~ 살아나는 느낌이다. 좋았어!
이 팀은 공연 끝나자마자 머천 판매대 쪽으로 와서 팬들과 인사하고 그런다. 그런 와중에 앞선 순서였던 드비셔스의 베이시스트이자 리더인 듯한 '알렉스 프라이(Alex Frey)'가 매대를 정리하는 것 같다. 인사하고 같이 사진 찍을 수 있냐 했더니 흔쾌히 수락해 줬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고 오늘 너희 공연은 처음봤는데 너무 재미있게 봤다고 얘기했더니, 자기 일본 종종 가는데 매번 한국 들러서 온댄다. 한국 음식과 분위기 정말 좋아한다 그런다. 와. 한국에 와본 적이 있다고 하니 너무 반갑고 재밌다. 그러더니, CD가 든 가방을 열어서 하나 주겠다고 고르라 한다. 이 앨범은 최신 앨범이고, 이건 우리 가장 히트한 거고 설명을 하더니 발매한 정규 앨범 네 장 전체를 다 가지라고 준다. 너무 놀라서 한 장만 받고 나머지는 내가 사겠다고 말하려는데 입이 안 떨어져서 어버버하고 있으니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이 정도 선물은 해도 된다 하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감사 인사를 하고 악수하고 헤어졌다.
공연 막 마친 카탈라노의 기타리스트와 보컬리스트와도 한 컷 찍었다.
카탈라노의 셋리스트는 사진을 못 찍었는데, 페북에 누구 셋리스트 사진찍은 사람 없냐고 올렸더니 밴드측에서 셋리스트를 답글로 달아줬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내가 setlist.fm에 셋리스트 등록했다.
다음은 '더 크루얼 인텐션스(The Cruel Intentions)'의 순서인데, 이 밴드 시작하기 전에 머천 매대 근처에 이 날의 헤드라이너인 베테랑 밴드 타이케토 멤버과의 팬 미팅 시간이 있었다. 딱 봐도 연륜이 느껴지긴 했는데, 내가 이 밴드를 잘 모르기도 하고 예습한다고 들어봐도 그닥 안 땡겨서 같이 사진도 안 찍었네. 그 옆에서 드비셔스의 알렉스랑 카탈라노 멤버들이랑 인사한 게 더 좋았다. ㅎㅎ
다음 밴드 '더 크루얼 인텐션스'는 내가 예습하면서 가장 맘에 드는 밴드였다.
4인조 밴드였는데, 뭔가 펑크 느낌 물씬 나는 보컬 겸 기타와 무대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면서 즐겁게 연주하는 기타가 눈에 확~ 띄었다. 음악도 글램락 느낌도 나면서 펑크스럽기도 한 게 에너지가 엄청 났다. 4시부터 시작한 공연이었고, 이 팀이 공연할 즈음은 이미 밤 10시 전후로 6시간 가까이 공연을 보고 있는 중이었지만, 이 때엔 뛰고 소리지르고 하면서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날 밤의 헤드라이너는 이 밴드 '더 크루얼 인텐션스'였다.
이 밴드가 참가한 밴드들과 친분이 좀 있는지, 공연 도중에 관객석에서 한 명이 무대로 올라가서 노래를 같이 부르는 거다. 뭐지? 아까부터 관객들 사이에서 뭔가 락 뮤지션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는데, 아무도 안 붙잡는 거 보니까 진짜 뮤지션 맞나봐. 이튿 날 공연하는 사람인가? 그러더니, 앞선 무대의 카탈라노 멤버들도 무대 위로 올라와서 같이 노래하고 뛰어 논다. 욜~
어헛~ 이거 재밌다! 분위기 마구 상승!!!
복잡복잡한 분위기에서 관객들과 단체 사진 찍으면서 끝났다. 햐~ 진짜 재밌었다!
마지막은 1987년에 결성되고 1991년에 데뷰 앨범을 낸 베테랑 밴드 '타이케토'의 순서다. 옛날에 잡지에서는 '티켓토'라고 했던 것 같은데, '타이케토'라고 하는 것 같다. 공연은 예정된 시간보다 한 15분? 20분? 정도 늦게 시작한 거 같다. 앞에 공연이 조금씩 늦어져서 순연되기도 했고, 타이케토 준비가 조금 더 걸리기도 했다.
옛날에 핫뮤직 같은 잡지에서 데뷰 앨범 표지는 많이 봤지만, 곡은 거의 들은 기억이 없다. 'Forever Young'이란 곡이 대히트를 했다 하는데, 그냥 조금 익숙한 정도.
하여간 공연이 시작했는데, 연주가 정말 깔끔하다.
모든 연주가 깔끔 그 자체인데, 곡은 컨트리 음악 필이 많이 느껴진다 할까? 굉장히 미국적인 것 같다. 내 취향 아님. 그래서 무대 뒤쪽에서 여유롭게 관람했다. 곡들은 인기있는 게 많은지 상당 수의 관객들이 따라 부르면서 즐기는 모습이었다. 맥주 한 잔 더 하면서 보고 싶지만, 공연 끝나고 또 1시간 가량 운전해서 가야 해서 아쉽지만 패스. ㅠㅠ
창단 멤버인 보컬과 드럼이 밴드 만든 시절의 얘기 등도 했던 것 같다.
그들의 대표곡 Forever Young으로 70분 가량의 타이케토의 공연이 끝났다. 데뷰하고 37년이 넘은 밴드지만, 보컬은 목소리가 짱짱했고, 각 연주 파트의 연주력도 베테랑 밴드답게 훌륭했다.
공연은 12시 반이 훌쩍 넘은 시각에 끝났다. 관객들은 우루루 바로 몰려가서 맥주를 또 사먹는 것 같다. ㅎㅎ
내가 주차장으로 나온 시각이 12시 45분이었고, 운전해서 숙소 도착하니 새벽 1시 50분 쯤 된 거 같다.
관객이 그닥 많다고는 할 수 없는 동네 페스티벌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그 퀄리티는 상당히 좋았다.
헤드라이너 때까지 해서 한 500명 있었을까? 굉장히 여유로운 분위기에 각자 즐기는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정말 맛있는 벨기에 맥주가 싸기까지 해서 관객들이 맥주를 엄청 마셔댔고, 취해서 좀비처럼 다니는 사람도 몇 있었다. ㅎㅎ 15유러 음료 티켓 사서 8유로 만큼 밖에 못 먹고 나온 게 무척 아쉽다. ㅎㅎ
공연을 보고 난 후에 귀국하고서도 밴드들의 다른 공연 소식을 보고 있는데,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보컬의 컨디션이 나빴다가 회복 중이었고, 내가 인사하니 아주 반겨주었던 드비셔스 소식이다.
전 세계가 물가가 많이 오르다 보니, 영세한 밴드가 공연 좀 해서는 어지간해선 돈이 안 되는 게 현실인가 보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회복에 돈이 많이 들어가고 있는 보컬이 투어를 함께 할 재정적인 여력이 없는지, 밴드와 결별을 전해왔다. 의견 충돌 이런 것이 아닌, 재정적인 어려움인 것이라는 것에 안타까움이 더 크네. 이번에 처음 접한 밴드이긴 하지만, 보컬의 회복을 응원하고 있던 차에 이런 소식을 접하니 안타깝다.
어찌 보면 글램락이라는 장르가 90년대 초 이후에 사라진 것 같았으나, 세계 어디에선가 그런 음악을 하고 있는 밴드가 여전히 있고 그들의 음악이 절대 시대에 뒤떨어진 그런 음악이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하루였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크랙샷이라는 멋진 밴드가 있지 않은가. 내가 한국에서 간다고 했을 때 어떤 벨기에의 글램락 팬이 한국의 글램락 밴드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크랙샷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 사람도 만나보고 싶었는데, 못 만나고 왔네.
밴드들도 올해 첫 페스티벌이어서 그런지 사진들이 좀 올라왔고. 관객들 사이에서 내 모습을 찾는 것도 재미있다. 그닥 어렵지 않으니, 나를 아는 사람들은 찾아들 보시라.
어쩌다 벨기에까지 가서 소규모 락 페스티벌을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멋진 글램락 밴드들이 활동하고 있음에 반가웠던 하루였다. 언제 어디서든 이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고, 또 새로운 멋진 밴드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다음 공연은 6월 1일 홍대 앞에서 한국 쓰래쉬 메탈 밴드들의 화끈한 무대! 와일드매치! 메써드 vs. 마하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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