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홈피에서 퍼옵니다. http://www.suhaenghwa.w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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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규영이는 손재주가 남 다르고 또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늘 좋아 한다.
따문 따문 바느질하여 만든 핸폰 걸이를 선물 받은 건 까만 옛 일이고,
비즈를 이용하여 만든 아주 근사한 반지며 팔찌며, 종이를 접어 만든 부채는 가히 수준급이며 내가 받은 핸드 메이드 선물만도 헤아릴 수가 없다.
“이건 할머니 선물이야”
“고마워, 정말 너가 만들었어?”
“너무 예쁘다. 꼭 가게에서 산 것 같구나...“
야무지고 꼼꼼하게 완성한 것이 여간한 솜씨가 아니라 선물을 받을 때는 너무 놀랍고 기특하여 칭찬을 아낄 수는 없다.
그리고 안쓰러워 그 작은 손을 꼭 잡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이게도 내 안에는 두 마음이 갈등하는 것을 나는 안다.
“뭐 그깟 것 못하면 어때. 공부 잘 해서 좀 더 진취적이고 멋지게 인생을 설계해야지”
“이런 시간에 뭔가 공부에 도움 되는 놀이 하면 좀 좋아”
나는 작은 비즈 알맹이가 영어 단어였으면 좋겠고, 색종이가 수학 공책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칭찬의 마음을 앞지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내 맘은 아랑곳없이 규영이는 이 방학에도 무슨 공예 교실에 다녔다고 한다.
“엄마 아빠랑 공방에 다니며 온갖 공예 다하더니...또 무슨 공예 교실?”
아이 맘 상하게 할 수는 없어 내지르지는 못하고 나는 끊임없이 머릿 속에서 잔소리를 해댄다.
그러는 내게도 규영이와 흡사한 취향의 어린 시절이 있었고, 뭔가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나를 말리는 끊임없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있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덤벙대는 딸을 나무랄지언정 꼼꼼하게 수 놓고 바느질하는 딸을 왜 못마땅해 하셨는지!
꼭 규영이만하던 시절.
그래도 나는 저녁이면 식모 언니가 수 놓고 바느질하는 방에 들어가서, 얼굴이 뽀얗게 예뻤던 언니-희봉언니?-가 구봉침이며 십자수 놓는 걸 구경하고 노는 걸 좋아 했던 기억이 있다.
훗날 여고에 입학하니까 수예, 재봉 시간이 따로 있어서 내 깐깐한 실력이 십분 발휘되기도 했는데...
그런데도 나의 어머니는 내가 바느질이나 뜨개질하는 걸 그렇게 못 견뎌 하셨다.
눈 아프게 뭘 보느냐? 그런 것 들여다 보면 몸만 상한다.
심지어는 내가 방학 숙제로 공단 방석을 수 놓고 있는 걸 못 보아 내시고는 엊그제 시집 온 올캐 언니더러 대신 수를 놓아 주라고 하시질 않나!
그러니 새 언니는 싫지만 수틀을 받아야만 했고, 나는 못 미더우니 그만 두라고 할 수도 없어 내색도 못하고....다음에 언니 몰래 뜯어 내느라 고생도 더 얹었고 수도 덜 민첩해졌던 일도 있었으니...
결혼하고 어머니의 가시권에서 좀 벗어났다 해도 어머니가 방문하시는 날은 바느질이나 뜨개질 하던 걸 감쪽같이 숨기기에 바쁘기까지 했었다.
어머니는 딸이 쉽게 살고 무조건 몸이 편하기만을 원하셨다.
지금에 와서 어머니께서 나에게 갖던 불만의 일정 부분을 이해하는 입장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이 우습다.
어쩔 수 없이 내 안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죽어서야 알게 되는 저승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나는 어린 규영이가 그런 사소한 것에 에너지를 쏟는 것을 보는 것이 저으기 불편하니 말이다,
그 작은 행복을
뺏아서도 안 되고 그 섬세한 집중의 시간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그런 여성스러움이 삶을 따스하게 하고, 섬세한 취미를 가진다면 규영이가 살아 갈 날에 많은 위안을 줄 수도 있을 것을 모르지 않으나
나는 얇은 성공을 바라는 세속적 할머니로서의 이율배반에 놓여 있다.
나와 다른 멋진 삶을 살고, 그러려면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아 주기 바라는 마음이 앞서기에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혼자 초조하다.
그초조한 마음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숨길 수가 없어 홀로 삐져 나오고 있다.
내 맘을 알 길 없는 규영이는 구정 선물이라며 갈색 비즈에 진주까지 박은 브로찌를 선물하며 할머니 색깔이란다.
나는 이 부로찌를 자랑스레 달고 다닐 것이며, 이 브로찌에다 행복하고 멋진 삶을 살아 갈 우리 손녀의 모습을 함께 담아 보며 기원할 것이다.
"한 알 비즈가 꿰어져 부로찌가 되었듯 너의 인생도 촘촘하게 아름답게 꿰어져 반드시 영롱한 보석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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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규영이는 손재주가 남 다르고 또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늘 좋아 한다.
따문 따문 바느질하여 만든 핸폰 걸이를 선물 받은 건 까만 옛 일이고,
비즈를 이용하여 만든 아주 근사한 반지며 팔찌며, 종이를 접어 만든 부채는 가히 수준급이며 내가 받은 핸드 메이드 선물만도 헤아릴 수가 없다.
“이건 할머니 선물이야”
“고마워, 정말 너가 만들었어?”
“너무 예쁘다. 꼭 가게에서 산 것 같구나...“
야무지고 꼼꼼하게 완성한 것이 여간한 솜씨가 아니라 선물을 받을 때는 너무 놀랍고 기특하여 칭찬을 아낄 수는 없다.
그리고 안쓰러워 그 작은 손을 꼭 잡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이게도 내 안에는 두 마음이 갈등하는 것을 나는 안다.
“뭐 그깟 것 못하면 어때. 공부 잘 해서 좀 더 진취적이고 멋지게 인생을 설계해야지”
“이런 시간에 뭔가 공부에 도움 되는 놀이 하면 좀 좋아”
나는 작은 비즈 알맹이가 영어 단어였으면 좋겠고, 색종이가 수학 공책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칭찬의 마음을 앞지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내 맘은 아랑곳없이 규영이는 이 방학에도 무슨 공예 교실에 다녔다고 한다.
“엄마 아빠랑 공방에 다니며 온갖 공예 다하더니...또 무슨 공예 교실?”
아이 맘 상하게 할 수는 없어 내지르지는 못하고 나는 끊임없이 머릿 속에서 잔소리를 해댄다.
그러는 내게도 규영이와 흡사한 취향의 어린 시절이 있었고, 뭔가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나를 말리는 끊임없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있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덤벙대는 딸을 나무랄지언정 꼼꼼하게 수 놓고 바느질하는 딸을 왜 못마땅해 하셨는지!
꼭 규영이만하던 시절.
그래도 나는 저녁이면 식모 언니가 수 놓고 바느질하는 방에 들어가서, 얼굴이 뽀얗게 예뻤던 언니-희봉언니?-가 구봉침이며 십자수 놓는 걸 구경하고 노는 걸 좋아 했던 기억이 있다.
훗날 여고에 입학하니까 수예, 재봉 시간이 따로 있어서 내 깐깐한 실력이 십분 발휘되기도 했는데...
그런데도 나의 어머니는 내가 바느질이나 뜨개질하는 걸 그렇게 못 견뎌 하셨다.
눈 아프게 뭘 보느냐? 그런 것 들여다 보면 몸만 상한다.
심지어는 내가 방학 숙제로 공단 방석을 수 놓고 있는 걸 못 보아 내시고는 엊그제 시집 온 올캐 언니더러 대신 수를 놓아 주라고 하시질 않나!
그러니 새 언니는 싫지만 수틀을 받아야만 했고, 나는 못 미더우니 그만 두라고 할 수도 없어 내색도 못하고....다음에 언니 몰래 뜯어 내느라 고생도 더 얹었고 수도 덜 민첩해졌던 일도 있었으니...
결혼하고 어머니의 가시권에서 좀 벗어났다 해도 어머니가 방문하시는 날은 바느질이나 뜨개질 하던 걸 감쪽같이 숨기기에 바쁘기까지 했었다.
어머니는 딸이 쉽게 살고 무조건 몸이 편하기만을 원하셨다.
지금에 와서 어머니께서 나에게 갖던 불만의 일정 부분을 이해하는 입장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이 우습다.
어쩔 수 없이 내 안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죽어서야 알게 되는 저승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나는 어린 규영이가 그런 사소한 것에 에너지를 쏟는 것을 보는 것이 저으기 불편하니 말이다,
그 작은 행복을
뺏아서도 안 되고 그 섬세한 집중의 시간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그런 여성스러움이 삶을 따스하게 하고, 섬세한 취미를 가진다면 규영이가 살아 갈 날에 많은 위안을 줄 수도 있을 것을 모르지 않으나
나는 얇은 성공을 바라는 세속적 할머니로서의 이율배반에 놓여 있다.
나와 다른 멋진 삶을 살고, 그러려면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아 주기 바라는 마음이 앞서기에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혼자 초조하다.
그초조한 마음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숨길 수가 없어 홀로 삐져 나오고 있다.
내 맘을 알 길 없는 규영이는 구정 선물이라며 갈색 비즈에 진주까지 박은 브로찌를 선물하며 할머니 색깔이란다.
나는 이 부로찌를 자랑스레 달고 다닐 것이며, 이 브로찌에다 행복하고 멋진 삶을 살아 갈 우리 손녀의 모습을 함께 담아 보며 기원할 것이다.
"한 알 비즈가 꿰어져 부로찌가 되었듯 너의 인생도 촘촘하게 아름답게 꿰어져 반드시 영롱한 보석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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